10년째 매출 2000억원대 박스권에 갇혀 있는 정식품이 비건 열풍에 다시 주목받고 있다. 베지밀로 유명한 정식품은 49년간 두유만 생산해온 두유 시장 절대 강자지만 특정 제품군에 한정된 포트폴리오가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하지만 최근 비건 열풍이 불면서 선제적으로 내놓은 식물성 건강 음료와 단백질 음료가 인기를 끌며 실적 개선을 이끌고 있다. 외식사업에 도전하는 등 사업 다각화에도 나서고 있다.

비건 열풍에 대체우유 시장 ‘쑥쑥’

'비건 열풍'이 잠자던 정식품을 깨웠다
5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2016년 4680억원 수준이던 국내 대체우유 시장은 지난해 6350억원 규모로 35.7% 성장했다. 2026년에는 8270억원으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2008년 15만 명에 불과했던 국내 채식 인구가 지난해 250만 명으로 급증하는 등 비건 열풍에 두유 등 대체우유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정식품은 지난해부터 대체우유 시장의 후광 효과를 누리고 있다.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비건 바람을 타고 매출(2630억원)이 회복세로 돌아섰다. 2020년 2606억원의 매출로 전년 대비 2.8% 역성장한 실적이 반등에 성공한 것이다. 영업이익도 6% 안팎으로 식품회사 중 준수한 수준이다. 비건 열풍이 계속 이어진다면 10년간 넘지 못했던 매출 3000억원의 벽을 넘어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식품은 국내 두유 시장의 54.4%(지난해 11월 누적 기준)를 점유하고 있는 1위 업체다. 두유 시장을 처음 개척한 베지밀이 두유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면서 삼육두유(26.0%)와 연세우유(5.2%) 등 후발주자들이 쉽게 추격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두유에만 집중하는 구조 탓에 사업의 확장성과 성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늘 받아왔다. 하지만 비건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두유를 비롯해 아몬드와 코코넛 등으로 만든 식물성 건강 음료에 집중한 전략이 오히려 빛을 발하고 있다. 루테인 두유와 저당 두유 등 기능성 프리미엄 두유의 지난해 판매량은 전년 대비 40% 이상 급증했다.

수출도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해 정식품의 두유 수출액은 전년 대비 17% 증가했다. 베트남과 필리핀 등 두유 섭취가 익숙한 동남아 시장이 주요 수출국이다. 앞으로 채식 문화가 상대적으로 발달한 미국과 유럽 등을 적극적으로 공략할 계획이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정식품은 두유 사업에만 집중하는 게 가장 큰 한계로 꼽힌 회사였지만 비건 열풍이 불면서 오히려 대체우유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회사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외식 등 사업 다각화 성공할까

정식품은 지난해 말 외식 사업에도 도전했다. 서울 회현동에 이탈리아 레스토랑 ‘넬보스코’를 열었다. 음료 사업 외에 이종산업에 진출한 것은 창사 이후 처음이다. 넬보스코도 정식품의 정체성에 따라 ‘건강한 음식’을 최우선 가치로 내걸었다. 정식품은 넬보스코를 통해 두유를 활용한 다양한 요리와 디저트를 선보이고, 비건 음식 등도 개발해 내놓을 예정이다.

다만 ‘3세 경영’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위기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정식품은 지분의 40.19%를 창업자의 2세인 정성수 회장이 갖고 있다. 올해 72세인 정 회장에 이어 가업을 물려받을 예정인 아들 정연호 씨는 정식품의 자회사 자연과사람들 대표를 맡아 경영 수업을 하고 있다.

정 대표는 2014년 정식품의 관계사인 오쎄 대표를 맡아 본격적으로 경영 일선에 나선 뒤 2017년 자연과사람들 대표로 자리를 옮겼지만 아직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음료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인 자연과사람들은 2020년 전체 매출 661억원의 46%인 304억원을 정식품에 의존하고 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