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재의 산업지능] 글로벌 1등 대학이 되는 비결
대한민국은 이미 세계 정상을 다투는 글로벌 기업이 다수 있다. 특히 반도체와 평판 디스플레이 같은 첨단제조 분야에서 국내 기업들이 세계 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도 글로벌 인지도와 영향력이 급상승 중이다.

그런데 1990년대 세계화 기치를 내건 이후, 세계 일류 대학 육성을 위해 엄청난 지원을 받은 우리 대학 교육은 왜 아직도 글로벌 초일류 반열에 오르지 못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글로벌 일류 대학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산업지능 경쟁력의 핵심은 대학이다. 우리 정부 및 국내 대학들은 해외에 기반을 둔 대학평가기관에서 매년 발표하는 대학랭킹을 근거로 대학 수준을 평가한다. 대학 내 연구자들의 연구 논문 발간 편수, 교수 대비 학생 수 등 객관적인 데이터와 함께 평판과 인지도 같은 정성적인 조사 정보를 수치화해서 순위를 매긴다. 나름 객관적인 근거가 있으며 대학의 수준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로 활용할 만하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런 외부 기관의 평가가 오히려 국내 대학의 경쟁력을 상실하게 하는 주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나 교육부에서 이 같은 해외 기관의 대학랭킹으로 국내 대학을 평가하다 보니 대학 운영 예산의 상당 부분을 정부에 의지하는 대학들로서는 이러한 랭킹에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지경이다. 예를 들어 국제화 수준이란 평가 지표는 외국인 학생 입학 비율을 따진다. 많은 국내 대학이 이 지표를 올리기 위해 외국인 학생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여 부작용이 발생한 경우가 허다하다. 교수 논문 출간 편수도 평가 지표에 반영되니 이를 올리기 위해 학교의 전문 연구 분야나 전략적 방향과 상관없이 무조건 논문 편수만 높은 교수를 영입하는 경우도 있다. 국내 대학의 랭킹이 매년 널뛰기하는 이유도 이런 평가 지상주의에 매몰돼 지표 올리기를 위한 단기적인 편법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학교의 장기 비전이나 철학을 기반으로 한 정체성 확립은 불가능하다. 일류의 정의가 무엇일까? 남이 만든 기준에 맞춰 1등 하는 것은 결코 일류가 아니다. 자신만의 기준과 비전을 갖고 이러한 비전을 실천하면서 타인과 타기관에 비전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 일류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가 초일류 대학이 될 수 있었던 것은 20세기 귀족화되던 학문과 이별하고 산업의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산업이 태동하던 시기 창업 생태계와 결합한 교육 시스템으로 단기간에 일류 대학 반열에 오른 대학이 스탠퍼드다. 해외 대학평가 순위 1위가 되기 위해 노력해서 얻은 결과가 아니라 자신들만의 교육 철학과 실천을 통해 세계 1위가 된 것이다.

자신만의 철학과 기준을 세우고 이를 통해 일류로 등극한 사례를 우리나라에서도 찾을 수 있다. 바로 반도체 산업이다. 외국 기업 베끼기에만 의존해서는 더 이상 일류가 될 수 없다는 판단에 1990년대부터 대한민국 실정에 맞는 고유의 시스템을 갖추기 시작했다. 당시 해외 경쟁사들은 제품 설계 경쟁력만 있다면 제조는 노동력이 싼 개발도상국에 위탁하면 된다는 전략을 추구했다. 그러나 국내 업체들은 해외에서 무시하는 제조 공정 및 운영 기술에도 기회가 있다는 차별 전략을 세우고 수많은 시행착오에도 뚝심 있게 제조 경쟁력 강화를 추진한 결과 세계 1위 반도체 제조 강국으로 등극하게 됐다. K팝이나 문화 콘텐츠도 해외를 모방하기보다 우리만의 제작 시스템으로 독창적인 문화 콘텐츠 개발을 이뤄내고 있다.

결국 대한민국 대학이 진정한 글로벌 교육기관으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해외 기관 지표 평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교육 철학과 가치를 세우고 이를 기반으로 장기적인 투자를 진행해야 한다. 성장에는 고통이 따른다. 남이 만들어준 기준에 그저 적절히 맞추면 크게 욕을 먹지는 않지만 큰 도약은 불가능하다. 그냥 지표는 지표일 뿐이다. 국가와 교육부 그리고 언론도 더 이상 외국 기관의 평가에 호들갑 떨지 말고 좀 더 우리 대학 실정에 맞는 육성 정책을 마련하고 대학이 자유롭게 자신들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확립해 더 큰 성장을 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편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