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카파 '쓰러지는 병사'…"촬영 장소·날짜상 실제 상황 아냐"
스페인내전 참상 알린 전설적 사진, 알고보니 연출?
세계적인 종군 사진기자 로버트 카파(1913∼1954)의 전설적 사진 '쓰러지는 병사'가 실제 상황을 담지 않고 연출된 작품이라는 주장이 재차 제기됐다고 영국 언론 텔레그래프가 3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한 손에 총을 든 병사가 어디선가 날아온 총탄에 머리를 맞고 팔을 벌린 채 뒤로 쓰러지는 순간을 포착한 이 사진은 현존하는 전쟁 사진 중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로 스페인 내전의 참상을 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수년 동안 이 사진의 진실성에 의문을 품어온 스페인 고고학자 페르난도 펜카는 이 사진이 연출된 것일 수 있다는 정황 증거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그는 지형측량법으로 사진이 찍힌 정확한 장소와 날짜를 확인했으며, 그 결과 이 사진이 실제 상황을 담았을 가능성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했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코르도바 출신인 펜카는 스페인내전 당시 코르도바 지역에서 전투가 치열했던 곳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와 생존자 인터뷰, 카파 기념재단인 뉴욕 국제사진센터(ICP)의 카파 소장 작품을 살핀 결과 이런 결론을 내렸다고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스페인내전 참상 알린 전설적 사진, 알고보니 연출?
쓰러지는 병사는 코르도바의 북부에 위치한 세로 무리아노에서 벌어진 전투 도중 참호에서 뛰어나온 공화파 병사가 총을 맞고 쓰러지는 장면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펜카는 사진이 찍힌 장소가 세로 무리아노에서 남쪽으로 약 50㎞ 떨어진 에스페호 마을의 '아사 델 렐로' 언덕임을 특정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사진이 찍힌 날짜가 1936년 9월 4일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며 "이 경우 이 사진은 연출된 것일 수밖에 없다.

1936년 9월부터 훨씬 나중까지 에스페호에서 아무런 전투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면서 "연출됐다고 할지라도 이 작품은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전쟁 사진 가운데 하나"라며 "사진은 스페인 공화파가 당시 전파하려 했던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스페인내전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좌파 인민전선이 이끄는 스페인 제 2공화국 정부와 훗날 내전을 승리로 이끌고 독재자가 된 프란시스코 프랑코를 중심으로 한 우파 반란군이 맞붙은 전쟁으로 1936년 7월 17일 발발했다.

코르도바는 내전 초기에 치열한 전투가 펼쳐졌던 곳으로, 카파는 동료이자 연인이었던 독일 종군 사진기자 게르다 타로와 이곳으로 달려가 내전의 이모저모를 앵글에 담았다.

스페인내전 참상 알린 전설적 사진, 알고보니 연출?
펜카는 1936년 9월 5일 카파와 타로 커플이 세로 무리아노에서 피난민들의 사진을 찍었다는 사실도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 커플은 전날 에스페호 전선을 방문한 공화파 고위 관계자들의 사진에도 함께 포착됐다.

당시 카파와 다른 사진기자들이 '그림이 되는'(promising) 피사체가 별로 없다고 불평했으며, 이에 따라 한 공화파 관리가 사람들에게 일부 동작을 연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당시 스페인내전을 취재하던 특파원의 발언도 기록으로 남아있다.

이와 관련, 펜카는 "카파와 타로 커플이 무기를 발사하는 척하고 병사들이 이에 맞아 죽은 척을 하면 이 커플이 병사들의 사진을 찍었다"라며 "타로가 이날 앞선 시간에 똑같은 형식의 카메라를 들고 가는 장면이 목격됐다는 점에서 쓰러지는 병사 사진을 타로가 찍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펜카의 이번 연구 결과는 스페인 마드리드의 콤플루텐세대학에 의해 공개됐다.

앞서 지난 2009년에도 한 스페인 교수가 이 사진의 촬영지가 에스페호 마을에서 연출됐다고 주장하는 등 쓰러지는 병사의 조작설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