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존 키무라 파커와 내셔널심포니오케스트라가 연주한 '랩소디 인 블루'. 케네디센터 유튜브 채널

음악이 시작되자마자 귀를 쫑긋 세우게 됩니다. 도입부부터 흘러나오는 독특하고 신비로운 클라리넷 선율에 매료되고 말죠. 음에서 음으로 쭉 미끄러지듯 연주하는 '글리산도' 기법이 적용돼 더욱 세련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 곡을 들어보셨을 텐데요. 미국 출신의 음악가 조지 거슈윈(1898~1937)이 만든 '랩소디 인 블루'이란 작품입니다. 클래식에 재즈가 가미돼 이색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죠.

이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미국 뉴욕 맨해튼을 걷고 있는 기분이 드는데요. 실제 우디 앨런의 영화 '맨해튼'(1979)에 OST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일본 인기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의 엔딩곡, 가수 변진섭의 '희망사항' 마지막 부분으로도 활용돼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지게 됐습니다.

거슈윈은 이를 통해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음악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영화 '맨해튼'엔 뉴욕을 "거슈윈의 음악이 요동치는 도시"라고 표현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죠. '랩소디 인 블루' '서머 타임' 등으로 미국 음악의 정수를 보여줬던 거슈윈의 작품 세계로 함께 떠나보겠습니다.
'랩소디 인 블루'로 장르의 벽을 허문 조지 거슈윈[김희경의 7과 3의 예술]
거슈윈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던 이민자의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우크라이나-리투아니아계 유대인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부유한 상인의 딸 로즈를 사랑하게 됐는데요. 로즈의 가족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오자, 덩달아 미국행을 선택했습니다. 이후 신발 공장 감독으로 일하며 결혼에도 성공했죠.

넷째 중 둘째로 태어난 거슈윈은 10살 때까지만 해도 특별히 음악에 관심을 보이진 않았는데요. 부모님이 형인 아이라를 가르치기 위해 피아노 한 대를 구매했던 것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습니다. 형은 피아노보다 문학에 관심을 가졌는데요. 이와 달리 그는 심심풀이로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가 점점 빠져들었습니다.

부모님은 그런 거슈윈의 재능을 알아보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개인 교습을 시켰습니다. 덕분에 그는 베토벤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던 찰스 햄비처를 만나 다양한 이론과 기법들을 익혔죠.

그러다 그는 갑자기 1913년 학교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고등학교를 중퇴했습니다. 거슈윈이 학교를 그만두고 향한 곳은 악보 출판사였습니다. 당시엔 음반이 대중화되지 못했는데요. 그래서 악보에 있는 음악을 직접 피아노로 쳐주며 고객의 선택을 돕는 '송 플러거(song plugger)'라는 직업이 따로 있었습니다. 거슈윈은 악보 출판을 돕는 동시에 송 플러거로 일했죠.

취업 후 3년 만인 1916년엔 첫 자작곡 '당신이 원하는 것은 가질 수 없고, 그것을 차지하고 나면 그땐 갖고 싶지 않네요'를 발표했습니다. 송 플러거 일을 하며 사람들의 취향을 잘 파악하게 되고, 이들을 통해 새로운 영감을 얻었던 것이 많은 도움이 됐죠.

때마침 음반 산업도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거슈윈은 에올리언 사에서 다양한 음반을 녹음했고, 점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소피 무터가 연주한 '서머 타임'. ABC 클래식 유튜브 채널

거슈윈은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데 귀재였습니다. 클래식을 기본으로 뮤지컬, 재즈, 오페라 음악을 접목하고 확장했죠. 그런 점에서 거슈윈의 음악은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섞여 있는 미국이란 나라와 많이 닮은 것 같습니다.

거슈윈은 먼저 뮤지컬 작곡으로 영역을 확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뮤지컬에서도 참신하고도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내며 인정을 받았습니다. 작곡가 윌리엄 메리건 달리와 '제발' '우리의 넬' 등 다양한 뮤지컬을 만들었죠. 또 작사가가 된 형 아이라와 함께 협업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924년 마침내 '랩소디 인 블루'로 화려한 전성기를 열었습니다. 당시 미국엔 재즈가 한창 인기를 끌고 있었습니다. 즉흥적이고 리듬감 넘치는 재즈 음악에 많은 사람들이 매료됐죠. 그중에서도 '재즈의 왕'이라 불리던 폴 화이트먼이란 인물이 있었는데요. 거슈윈은 그를 만나 인연을 맺게 되며 재즈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클래식과 재즈를 융합하는 새로운 실험을 하기로 했죠.

그렇게 탄생한 '랩소디 인 블루'는 1924년 뉴욕 에올리언홀에서 초연됐습니다. 도입부가 울려 퍼지자마자 관객들의 반응은 매우 뜨거웠다고 합니다.

관객들은 이 공연에서 앞서 연주된 다른 작곡가들의 음악엔 큰 흥미를 못 느끼고 지루해 하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그러다 '랩소디 인 블루'가 울려 퍼지자마자 분위기가 크게 반전됐습니다. 재즈를 만나 더욱 새롭고 변화무쌍해진 선율에 관객들은 일제히 집중하고 열광했죠.

이후엔 음반이 100만 장 넘게 팔리는 등 세계적인 열풍이 일었습니다. 영국 지상파 BBC는 이후 다시 열린 이 작품의 공연을 생중계하기도 했습니다.

피아니스트 치몬 바르토와 도이치방송교향악단이 연주한 '피아노 협주곡 F장조'. 도이치방송교향악단 유튜브 채널

그는 흑인 음악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뉴욕 필하모닉 상임지휘자였던 월터 담로슈의 위촉을 받아 만든 '피아노 협주곡 F장조'엔 클래식, 재즈, 흑인 음악이 한데 어우러져 있습니다. 고전주의 시대의 협주곡 양식인 3악장 구성을 그대로 지키면서 재즈 선율과 흑인 춤곡 리듬을 가미한 겁니다. 피겨 여왕' 김연아 선수가 2010 밴쿠버 올림픽 때 이 곡을 프리 스케이팅 배경 음악으로 선택해 국내에서도 많이 알려지게 됐죠.

거슈윈은 흑인 음악과 그들의 문화를 익히기 위해 이들이 밀집한 지역에 집을 얻어 생활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오페라 '포기와 베스'를 만들었죠. 작품은 흑인들의 삶과 애환을 담고 있는데요.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서머 타임'이 이 오페라에 나옵니다.

그는 안타깝게도 39세의 젊은 나이에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거슈윈이 세상을 떠나자 많은 미국인들이 슬퍼했고, 음악가들은 추모 공연을 열었죠. 생전에 모리스 라벨이 그를 향해 했던 말도 두고두고 회자됐습니다.

라벨은 '볼레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등으로 유명한 프랑스 작곡가죠. 라벨이 공연차 미국에 오자, 거슈윈은 그를 찾아가 스승이 되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라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저절로 샘처럼 솟아나는 듯한 멜로디를 가진 사람이다. 일류의 거슈윈이 되는 것이 이류 라벨이 되는 것보다 낫지 않겠는가."

샘처럼 솟아나는 아이디어와 선율로 모든 음악 장르를 넘나들었던 거슈윈. 그의 세련되고 감각적인 음악들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것 같습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