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행과 조롱 참지 못해 대항했다가 쌍방폭행 적용
기댈 곳 없는 학폭 피해자…보호 대책 유명무실
또래 집단에 괴롭힘을 당하던 청소년이 저항했다는 이유로 가해자와 같은 취급을 받게 되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전후 사정과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기계적인 대응에 급급하면서 정작 피해자 보호는 유명무실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30일 광주 남구 한 중학교 3학년 A군의 주장에 따르면 A군은 지난 5월 26일 점심 식사를 마치고 교실로 향하는 계단에서 누군가 엉덩이와 엉덩이 사이를 더듬는 추행을 당했다.

A군을 놀리기 위한 "똥꼬 슬러시"라는 말 때문에 더욱 수치심을 느꼈다고 A군은 진술했다.

A군이 뒤돌아보니 덩치도 크고 나이도 1살 많은 같은 반 야구부 B군의 짓이었다.

남학생들의 짓궂은 '장난'으로 치부하기에는 A군을 향한 일부 학생들의 추행과 조롱은 계속됐다.

첫 추행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던 A군은 교실로 돌아가던 길에 또다시 같은 일을 당했다.

이번에는 야구부 학생들과 친하게 지내는 다른 반 학생이었다.

수모를 겪고 돌아온 교실에서도 B군은 계속 A군에게 똑같은 욕설을 섞어 놀림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일주일 뒤에도 B군은 학교 정자를 지나는 A군을 향해 같은 방식으로 또다시 놀렸다.

B군과 함께 있던 20여명이 이러한 조롱에 박장대소를 하는 상황은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끼기 충분했다는 게 A군 측의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광주시 청소년상담복지센터 박정호 팀장은 "청소년기는 또래집단에서 정체성을 찾는 시기"라며 "또래 안에서 느끼는 성적 수치심이나 신체·언어적 폭력은 성인들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크게 다가오고 오래 기억에 남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A군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교사에게 알렸다.

해당 교사가 B군을 불러 훈계하자 이번엔 B군 대신 같은 야구부원인 C군이 전면에 나섰다.

C군의 계속되는 시비와 놀림을 참지 못한 A군은 결국 C군을 향해 주먹을 날렸고, 이후 체격이 좋은 C군의 일방적인 폭행이 시작됐다.

이 사건으로 둘은 각각 전치 2주의 부상을 당했다.

문제는 이후 발생한 사건 처리 과정에서 법과 제도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났다는 점이다.

학교의 자체 조사 결과를 토대로 열린 학교폭력심의위원회는 A군과 C군에게 동일한 교내봉사 6시간의 징계를 결정했다.

A군도 주먹을 썼다는 이유로 가해자 취급을 받았다.

쌍방 폭행에 앞서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했던 A군의 사정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셈이다.

놀림을 시작한 B군에게는 교내봉사 10시간이 처분됐다.

학교 측은 "3명의 학생을 모두 가해자로 보고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A군을 괴롭힌 상황은 당시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었다"며 "반면 상호 폭행은 명백하게 드러난 일이었던 만큼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A군 측이 제기한 괴롭힘과 추행 등을 대부분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경찰 역시 B군과 C군을 송치하면서 A군도 가해자로 송치했다.

이를 두고 A군 측은 "괴롭힘에 대항하더라도 보호받을 수 있는 현행 법·제도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호소했다.

지난 7월에도 다수의 여학생이 또래 여학생 1명을 폭행하거나 방조한 일이 벌어졌지만, 학교와 경찰은 이 학생이 맞서 싸웠다는 이유로 폭행 혐의를 모두에게 적용해 송치한 바 있다.

한편 B군 보호자는 "아이가 잘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괴롭히려는 의도는 없이 장난을 쳤을 뿐"이라며 "폭행에 관여하지 않았고 A군을 괴롭히라고 시킨 적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사소한 장난까지 문제로 삼는다면 삭막해서 학교를 어떻게 다니나"라면서도 "앞으로 행실에 주의하도록 지도하겠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