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은 초저탄소 에너지원" vs "다른 식으로 환경피해" 첨예한 대립 속 환경부 "사회적 합의 필요" 원론적 입장
정부가 30일 어떤 경제활동이 친환경이고 탄소중립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는지 가리는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라는 기준을 내놨지만, '원자력발전을 넣느냐 빼느냐' 하는 다툼은 이제부터 시작일 것으로 보인다.
관련 기관, 업계와의 갈등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환경부는 일단 국제동향과 국내상황을 살피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내놨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앞서 환경부에 제출한 녹색분류체계 관련 의견서에서 원전을 '초저탄소 에너지원'이라고 주장하며 녹색분류체계에 넣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한수원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자료를 인용해 원자력발전 전주기(全週期·건설부터 폐기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이 생산전력 1킬로와트시(kWh)당 12gCO2eq(이산화탄소 환산량)로 태양광(27~28gCO2eq)보다 적고 풍력(11~12gCO2eq)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원자력발전 온실가스 배출량은 유엔 유럽경제위원회(UNECE)의 올해 10월 '발전원별 전주기 평가'(Life Cycle Assessment of Electricity Generation Options) 보고서에서도 적은 편인 것으로 나타났다.
UNECE가 추산한 원자력발전 평균 온실가스 배출량은 '1kWh당 5.1gCO2eq'로 육상 풍력발전(12gCO2eq)이나 수력발전(360메가와트급·11gCO2eq)보다 적었다.
원자력발전 온실가스 배출량 대부분은 연료인 우라늄을 추출·변환·농축하는 등 선행과정(front-end processes)에서 나온다고 UNECE는 설명했다.
원자력발전에 우호적인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작년 '기후변화와 핵발전' 보고서에서 "원자력발전은 수력발전과 함께 전주기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적은 발전기술"이라면서 "원자력발전이 탈탄소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IAEA에 따르면 1971년부터 2018년까지 '원자력발전 때문에 덜 배출된 온실가스'는 73.7Gt(기가톤)으로 같은 기간 실제 배출량(370.8Gt)의 20% 수준이었다.
반면 원자력발전이 '저탄소 에너지원'은 결코 아니라는 주장도 많다.
이런 주장의 근거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자료 하나가 영국 서식스대 벤저민 소바쿨 교수의 2008년 논문인데 이 논문에서 원자력발전 전주기 온실가스 배출량은 1kWh당 66.09gCO2eq로 추산됐다.
이 가운데 원전을 해체하면서 1kWh당 12.01gCO2eq의 온실가스가 나오는 것으로 추산됐다.
마크 제이콥슨 스탠퍼드대 교수의 경우 건설·운영·해체 등을 거치며 원전이 100년 동안 온실가스를 1kWh당 78~178gCO2eq만큼 배출한다는 추산을 내놓기도 했다.
온실가스 배출이 덜한 것과 무관하게 원자력발전을 녹색분류체계에 넣어선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다른 방식으로 환경을 파괴할 여지가 크다는 이유에서다.
녹색분류체계에는 '(경제활동이) 환경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다른 환경목표에 심각한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DNSH)라는 원칙이 있는데 원자력발전이 이 원칙에 부합하는지를 두고 의견이 첨예하게 갈린다.
한국이 녹색분류체계를 만들며 벤치마크로 삼은 유럽연합(EU)도 원자력발전을 녹색분류체계에 포함할지를 두고 회원국 간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전력생산 70%를 원자력발전에 기대는 프랑스와 폴란드 등 동유럽국가는 녹색분류체계에 원자력발전을 넣자는 입장이고 '탈원전 선두주자'인 독일과 스페인 등은 반대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애초 22일 결론을 발표하려 했다가 회원국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내년 1월 또는 2월 중으로 일정을 미뤘다.
결국 '온실가스 배출량은 적지만 사고가 발생했을 때 피해가 클 수 있고 폐기물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원자력발전을 녹색분류체계에 포함할지 다툼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녹색금융 규모가 커질수록 다툼은 첨예해질 전망이다.
녹색금융 '투자기준'으로 만들어진 것이 녹색분류체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녹색분류체계 주무 부처 환경부는 원론적 입장밖에 없다.
환경부는 29일 열린 사전 브리핑에서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와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신규 원전을 도입하지 않는 것으로 돼 있어 원자력발전을 녹색분류체계에 포함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EU 등 국제사회 동향과 국내여건을 고려해 사회적 합의를 통해 (원자력발전의 녹색분류체계) 포함 여부를 지속해서 검토하겠다"라고 밝혔다.
또 "녹색분류체계가 완전히 고정된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녹색분류체계에 원자력발전을 포함할 가능성을 닫지 않은 것이다.
사회적 합의와 관련해 환경부 관계자는 '합의를 끌어낼 구체적인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없다"라면서 "원론적 입장을 밝힌 것"이라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EU가 원자력발전을 녹색분류체계에 넣는 경우를 가정한 질문엔 "가정을 전제로 단정해 말하기 곤란하다"라면서 "EU 발표가 있으면 자세히 검토하고 이후 국내사정을 고려한 검토와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본다"라고 원론적 입장을 되풀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