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의 '엑스맨'을 봐야 내년 증시도 보인다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엑스맨'인가 '소신파'인가.

미국 민주당 소속의 조 맨친 상원의원에 대한 평가는 엇갈립니다. 초당파 의원들과 그 지지자들은 '미쓰터 쓴 소리'로 추켜세우는 반면 민주당 강경파 의원들과 그 지지자들은 배신자 프레임에 가둬두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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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명한 평가 중 어느 쪽에 손을 들어야 할 지는 사람마다 달라도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2021년 한 해 동안 미국 정가를 뜨겁게 달군 인물 중 한 명이라는 점이죠. 민주당과 공화당이 50대 50으로 반분하고 있는 상원에서 상왕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이든 "조 맨친에게 물어봐"로 귀결됐습니다. 이 법안이 의회를 통과할 지, 이 인사가 괜찮은 지에 대해 대부분 맨친 의원이 캐스팅 보트를 쥐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뉴욕 증시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물 정치인이 됐습니다.


이 기사는 유튜브 채널 '한경 글로벌마켓'의 '정인설의 워싱턴나우'로도 제공해드립니다.

바이든의 오랜 동료에서 천적으로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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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친 의원의 존재감은 연말에 정점을 찍었습니다. 바이든의 역점 사업인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BBB) 법안을 반대하면서입니다.

BBB 법안은 11월에 하원에서 가결돼 상원만 통과하면 시행될 수 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연휴 전에 끝내기 위해 백악관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맨친 의원이 반대했습니다. 그는 지난 14일 "소비자 물가 상승과 연방정부 부채 증가, 코로나19 변이 출현 때문에 예산안을 통과시킬 수 없다"고 맞섰습니다.

곧바로 골드만삭스는 미국 성장률 전망치를 내렸습니다. 내년 1분기 미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3%에서 2%에 하향 조정했습니다. 2분기는 3.5%에서 3%로, 3분기는 3%에서 2.75%로 각각 떨어뜨렸습니다.

직전까지 골드만삭스는 BBB 법안의 의회통과 확률을 절반 이상으로 봤지만 맨친의 반대 이후 통과 가능성 자체를 변수에서 제외했습니다. 당시 뉴욕 증시도 이 영향을 받아 휘청거렸죠.

'맨친표' 예산으로 바뀔 '바이든표' 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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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B 예산의 전체 규모는 계속 달라졌습니다. 최초 백악관이 만들 때만 해도 3조5000억달러였다가 맨친 등 민주당 중도파 의원들이 기를 쓰고 반대하자 정확히 1조7500달러로 줄여 의회로 넘겼습니다.

의회에서 민주당 진보파 의원들을 달래기 위해 이민 지원 예산과 유급 휴가 예산을 넣어 2조달러를 넘겨 통과시켰습니다. 그런데 정확한 예산 규모는 언론사마다 달리 보도하고 있습니다. 예산 항목별 기간을 언제까지로 하느냐와 기존 예산과 정확히 구분하느냐 등에 따라 규모는 천차만별입니다.

뉴욕타임스는 2조2000억달러로 보도하고 있고 월스트리트저널과 블룸버그통신 등은 2조달러 예산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CNN은 1조9000억달러로, 워싱턴포스트는 1조8000억달러로 각각 전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예산규모는 또 달라질텐데' 하는 생각에 매체별 기준으로 집계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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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예산은 대부분 복지를 늘리는 재원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유급 휴가 비용과 아동수당 지급, 프리스쿨 무상교육, 오바마케어 확대 등입니다.

GM 살리고 테슬라 죽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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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지원 비용으로는 전기차 및 전기자전거 보조금이 대표적인 내용입니다. 전기자전거를 사면 최대 900달러 범위 안에서 구매 비용의 30%까지 세액 공제를 해줍니다.

전기차 보조금이 논란이 됐습니다. 전기차 지원금이 테슬라보다 노조가 있는 디트로이트 완성차 회사에 유리하게 짜여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GM 포드 노조 중심의 디트로이트 완성차 회사에 최대 1만2500달러의 세액공제를 해주고요. 테슬라 같은 노조가 없는 회사엔 최대 8000달러의 세액 공제만 해줍니다. 연봉이 4만달러 이하인 자가 5만5000달러 이하의 전기차를 사야 이 혜택을 제공해 고가차량이 많은 테슬라에 불리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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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자세히 보면 메이드인 USA에 유리하게 설계돼있습니다. 처음 5년엔 전기차 제조국에 관계없이 7500달러를 줍니다. 다음 5년엔 미국에서 제조된 전기차에만 7500달러를 줍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제조한 배터리에 500달러를 추가로 지급합니다. 그리고 노조가 있는 디트로이트 회사의 전기차에 4500달러를 추가로 제공하도록 설계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메이드인 USA, 친 노조 전기차에 더 많은 혜택을 주는 거죠.

맨친이 문제 제기한 건 아동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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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친이 BBB를 반대한 것은 전기차 지원도 유급휴가 비용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아동수당 때문이었습니다. 어차치 아동수당을 주면 최소 10년을 줘야 할텐데 그걸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하게 예산을 반영하자'고 걸고 넘어진 겁니다. 그렇게 되면 예산 규모가 확 커지겠죠.

그런데 그 법안에는 2025년 정도까지 아동수당 주는 것으로 했는데 10년을 주지 못하니 이번 예산에서 아동수당은 제외하자는 논리였습니다. 사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아동수당은 고등학교 이하 자녀들이 있는 가정에 보조금을 뿌려 내년에 있는 중간선거에 유리하게 이용하려는 정치적 목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맨친이 재를 뿌리니 민주당 입장에선 정말 미울 수밖에 없습니다. 한시적으로나마 이 예산을 책정해 반응이 좋으면 차후에 추가로 예산을 잡으면 되는데 맨친이 아예 불가능하게 만든 것이죠.

맨친, 증시 종잣돈으로도 쓰인 아동수당 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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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아동수당을 생각한 건 중산층 이하의 미국민들의 불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초강대국에 최고 선진국입니다. 하지만 복지 수준으로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식 자본주의가 원래 그렇기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몇 안남은 아동수당 미지급 국가였습니다.

일부 주에선 주 정부 차원에서 아동수당을 주지만 연방 정부차원에서 수당을 지급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 1997년에 처음 생겼습니다. 아동세액공제 혜택(Child Tax Credit)이란 이름으로 중하위층 가구를 지원했습니다.

부부합산 소득이 40만달러 이하이면 6세 미만 자녀당 최대 2000달러를 세금에서 환급해주는 방식이었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보조금이나 아동수당이 아니었죠. 연간 세금에서 공제를 해주니 바로바로 필요할 때 쓰기에는 불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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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올해부터 사전 지급 형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코로나19가 큰 영향을 미쳤고요. 매달 250~300달러를 지급했습다. 우선 돈을 매달 주고 연말에 내야할 세금보다 받은 아동수당이 더 많으면 돈을 토해내는 식으로 바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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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변화는 지급규모가 확대됐습니다. 자녀당 2000달러에서 3000달러에서 3600달러로 50% 이상 늘었습니다. 그리고 6세 미만 자녀 뿐 아니라 18세 미만 자녀로 지급 범위도 넓어졌습니다. 코로나19로 학교가 문을 닫아 보육비나 교육비가 확 증가한 것을 반영한 것입니다. 6세 미만 아동에게는 월 300달러, 18세 미만 자녀에게는 월 250달러를 지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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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급액이 늘면서 이 돈으로 주식투자나 저축을 하는 가구도 늘었습니다. 대부분을 차지하는 하위층은 소비에 썼지만 중산층 이상에선 아이들 이름으로 주식을 사는 부모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내년이 문제였습니다. 올해 아동수당까지는 지난 3월 의회를 통과한 1조9000억달러 규모의 미국 구조 계획(American Rescue Plan) 예산으로 지원하지만 내년부터는 신규 예산으로 충당해야 합니다. 민주당과 백악관은 2025년 정도까지 BBB 법안으로 조달하려 했지만 맨친이 태클을 건 것입니다.

계속돼온 맨친의 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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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친이 나선 건 이번만이 아닙니다. 올해만 해도 많습니다. 지난 2월 바이든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이 백악관 예산관리국장(장관급)으로 지명한 니라 탠든 후보자 인준에도 반대했습니다. 탠든의 과거 공화당 의원들에 대한 '막말 트윗'이 의회에서 초당적 협력 분위기를 해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결국 탠든 지명을 철회했습니다.

지난 5월 민주당이 주도하는 하원이 워싱턴DC를 미국의 51번째 주(州)로 승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을 때도 반대했습니다.

워싱턴DC는 민주당의 텃밭입니다. 지금은 주가 아니어서 상·하원 의원이 없습니다. 하지만 주로 승격하면 민주당은 지금보다 상원의원 2명, 하원의원 1명을 늘릴 수 있죠. 조 바이든 대통령도 법안 통과를 지지했지만 맨친은 반대했습니다. 워싱턴DC를 주로 만들고 싶으면 헌법을 고치라는 원칙론으로 맞서 결국 관철시켰습니다

맨친은 연방 최저임금 2배 인상(7.5%→15.0%), 법인세율 28%로 인상(현재 21%)도 반대하며 민주당 지도부나 백악관 등과 각을 세웠습니다. BBB 법안 이전에 의회에서 통과된 초당적 인프라 법안도 공화당 주장을 반영해 규모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해 결국 그의 의견이 반영됐습니다.

맨친의 향후 운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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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친은 초당파, 양당파 의원의 좌장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공화당과의 협치를 중시합니다.

맨친의 지역구 웨스트버지니아는 공화당 강세 지역입니다. 지난해 대선 때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70% 가까운 득표율로 승리한 곳입니다. 맨친은 여기서 두 차례 주지사를 지낸 뒤 상원의원 선거에 세 번 출마해 모두 승리했습니다. 그가 공화당과의 협치를 중시하는 배경이죠.

민주당이 공화당 반대를 무력화시킬 목적으로 상원에서 필리버스터(무제한 반대토론) 제도를 폐지 또는 완화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선 단호히 ‘노(no)’를 외칩니다. 바이든 대통령도 겁박하지만 맨친은 끄떡하지 않습니다.

본인이 수세에 몰릴 때마다 주요 언론에 기고해 본인의 원칙론을 설파합니다. 그래서 일부 민주당 지지자는 맨친을 “적인지 아군인지 모르겠다”며 못마땅해합니다. 이에 대해 맨친은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자기들만 옳고 상대방은 틀렸다고 생각하는 건 문제라고 비판합니다.

올해가 맨친의 몸값이 정점이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민주당과 공화당 의석 수가 50대50으로 같은 상원에서 최고의 지위를 누렸습니다. 모두 맨친에게 와 굽신거리며 제발 통과시켜달라고 읍소해왔습니다. 내년 11월 중간선거 때까지 이런 일은 반복될 가능성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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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년 중간선거에서 50대50의 구조가 깨지면 맨친은 어떻게 될까요. 민주당 진보파 의원들이나 민주당 지도부가 맨친을 가만히 두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벌써부터 공화당에서 맨친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습니다.

'엑스맨'과 '소신파'라는 극단의 평가를 받고 있는 맨친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요. 한국에서 반복돼온 중도파, 회식지대의 자멸로 이어질까요. 아니면 정치적 지형이 어떻게 변화하든 관계없이 존 매케인 전 의원처럼 중도파 대부으로서 입지를 굳힐까요. 올해처럼 2022년에도 증시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는 오피니언 리더가 될까요.

일단 맨친의 상원의원 임기는 2024년까지입니다. 한때 정계은퇴까지 생각했던 맨친은 정치를 계속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민주당이 싫어하면 무소속이라도 출마하겠다"는 뜻을 보이고 있습니다. 차기 대선까지 생각하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향후 맨친의 행보가 궁금해집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