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프리즘] 한국은행 BSI는 엉터리다
사람들의 심리가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에 대해 본격 주목한 경제학자는 존 메이너드 케인스였다. 그는 저서 《고용, 이자 그리고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에서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이란 말을 썼다. 기업가들이 철도나 대서양 횡단 여객선 사업에 뛰어드는 것은 정교한 계산을 통해 10년 뒤 얼마나 돈을 벌지 계산해서가 아니라 실제론 즉흥적인 욕구에 바탕을 둔 자신감의 표출이라고 진단했다. 두려움이나 우유부단함을 나타내는 것 역시 야성적 충동의 다른 면이라고 봤다. 케인스는 이 때문에 자본주의 경제가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을 안고 있다고 주장하며, 고전파 경제학자들과 결별했다.

소비자들이 경제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를 처음으로 조사한 곳은 미국 미시간대학이다. 1946년 소비자동향조사(CSI)를 내놨다. 지금은 웬만한 나라치고 CSI를 발표하지 않는 곳이 없다. 행동주의 경제학자들은 CSI가 높은 수준을 나타낼수록 미래 국내총생산(GDP)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실험 결과도 내놨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를 지낸 올리비에 블랑샤르는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한 1990년부터 1991년까지 미국에서 나타난 단기 경기침체가 유가 상승보다는 소비자들의 심리 저하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미시간대 CSI가 전쟁 발발 전부터 크게 하락했다는 것을 근거로 제시했다.

심리지표는 크게 두 가지다. CSI와 함께 기업경기실사지수(BSI)가 한 축을 이룬다. CSI가 소비자들의 심리라면 BSI는 기업 관계자들의 심리를 보는 것이다. 한국에선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에서 두 가지를 매달 발표한다.

그런데 연구기관 종사자들이나 금융시장 참가자들은 한은의 CSI는 높게 평가하지만 BSI는 크게 참고하지 않는다. 이유가 있다. 2008년부터 분기단위에서 월단위 조사로 바뀐 CSI는 2008년 7월부터 지난달까지 평균이 101.7이다. 최저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12월의 70이었고 최고는 2009년 10월의 121.5였다. 지난달 지수는 107.6으로 발표됐다. CSI는 장기간 기준선 100을 중심으로 등락을 나타내고 있다. 100을 웃돌면 향후 경기가 좋아질 것으로 보는 소비자가 그렇지 않은 소비자보다 많다는 얘기다.

하지만 한은 BSI는 엉터리다. 분기별 조사에서 월별 조사로 바꾼 2003년 1월부터 지난달까지 평균이 77(전산업 업황 BSI) 수준이다. 최저는 2008년 12월과 2020년 4월의 51이었다. 역대 최고는 2010년 5월의 95다. 평균은 몰론이고 최고치조차 조사의 중간값이라고 할 수 있는 기준선 100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한은 전·현직 넷 중 세 명은 이런 말을 한다. “3225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하는데 기업 관계자들은 대부분 비관적으로 답한다. 그런 지적이 계속 있었는데 지도부가 묵살했다. 이 때문에 한은 내부에선 80 넘으면 대충 경기가 나쁘지 않은 것으로 해석한다”고. 문제가 있으니 빨리 고쳐야 한다는 쪽은 넷 중 한 명 정도에 불과하다. 한은은 그렇게 오랫동안 기업인들이 비관적으로 응답하는 것을 보고도 엄청난 오차를 보정하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하다못해 3점 척도(긍정, 보통, 부정)에서 CSI처럼 5점 척도(매우 긍정, 다소 긍정, 비슷, 다소 부정, 매우 부정)로 바꾸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다. 민간인 한국경제연구원의 BSI(종합경기 BSI)는 어째서 100 넘게 나오는지 별로 참고도 하지 않는다.

요즘 한은 내부에선 혁신한다고 난리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머서에 용역을 줘서 혁신방안을 받아들고 어찌할까 고민 중이다. 평가는 어떻게 바꾸고 성과급은 어떻게 차등화해 새로운 한은으로 만들까 연구 중이다.

하지만 경제지표 하나 제대로 못 만들면서 무슨 혁신을 한다는지 의문이다. 신뢰가 생명인 중앙은행에서 신뢰를 회복하는 것보다 더 시급한 혁신은 또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