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지지층의 '비토', 586의 '외면'…친정서 이중고에 빠진 이재명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선거 후보가 친정에서 '고립무원'에 처한 모양새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 이어 다주택자 양도세 일시 완화 등 이 후보가 화두를 던진 정책이 번번이 민주당의 벽에 부딪히면서다. 특히 당내 주류 세력인 86그룹이 반대에 선봉에 서면서 이 후보의 정책적 입지가 확대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전통 지지층 일부의 이 후보에 대한 '비토'가 좀처럼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 후보로서는 고민이다.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14일 라디오에서 이 후보가 제기한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필요성에 대해 "효과가 없었다"고 일축했다. 윤 원내대표는 "후보의 말을 근거로 도입 여부를 검토 중이지만 방침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대선 후보의 제안에 하루 만에 당 지도부가 공개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을 내놓는 것은 이례적이다. 선거를 앞두고 통상 후보 중심으로 메시지가 관리되기 때문이다. 윤 원내대표는 민주당 내 운동권 출신 86그룹의 맏형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이를 두고 이 후보가 여당 후보가 된 뒤에도 과거 대선 경선을 치르면서 부각된 86그룹의 껄끄러운 관계가 해소되지 못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다만 윤 원내대표는 측근들에게 "중립적으로 말한 것"이라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후보가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입장을 철회했을 때에도 비슷한 해석이 나왔다. 민주당 지도부는 당초 이 후보의 전 국민 지원금 지급 제안에 힘을 실었는데, 청와대가 반대하고 나서자 돌연 지도부가 이 후보를 설득하고 나섰다.

이 후보 측에서는 '실용 행보'로 포장했다. 하지만 이 후보의 '트레이드 마크'인 전 국민 지원금 철회는 86그룹이 주류인 당·청과 문 대통령보다 지지율이 낮은 이 후보 간 힘의 불균형에 따른 결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文지지층의 '비토', 586의 '외면'…친정서 이중고에 빠진 이재명
86그룹은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새 피 수혈론'에 힘입어 정치권에 입문한 운동권 인사들을 말한다. 이들은 1960년대 생으로, 1980년대 각 대학 총학생회장과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간부를 지냈다.

'비주류'인 이 후보는 과거 경선에서 문 대통령을 지지한 86그룹과의 갈등을 노출했다. 지난 경선에서도 일부 86그룹 인사는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를 지지해 이 후보와 대척점에 섰다. 최근 이 후보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성과도 있다'고 발언한 것 역시 반(反)독재·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던 86그룹의 반발을 샀다.

이 후보도 86그룹 인사를 주요 보직에 최소한으로 인선하는 등 거리를 두고 있다. 86그룹으로 분류되는 김영진 민주당 사무총장은 이 후보의 중앙대 후배로 예외적이다. 이 후보는 사석에서 86그룹에 대한 불신을 내비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당 안팎에서는 '이재명의 당선'이 '586 심판'이라는 인식도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이 후보가 당선되면 586에 대한 물갈이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대한 일종의 대비책으로 86그룹 안팎에서는 벌써부터 차기 당권 주자로 전대협 1기 의장인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나서야 한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문 대통령을 지지하지만 이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일부 전통 지지층의 비토론도 이 후보가 서둘러 극복해야 할 과제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이 후보는 여당의 전통 지지층인 호남·2030 여성·진보층에서 문 대통령보다 5%포인트 수준 낮은 지지율을 보인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대구·경북(TK)과 같은 비(非)전통 지지층에서 이 후보의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높다"며 "대선이 다가올수록 지지층도 결집할 것"으로 낙관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