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작 장편영화, 39년 만에 국내 개봉
대만 거장 에드워드 양의 반짝이는 첫 작품…영화 '해탄적일천'
"내가 궁금한 건 오빠가 행복한지야."
결혼을 앞둔 자리(장애가 분)가 오빠에게 묻는다.

사랑하는 여자 웨이칭(호인몽)을 버리고 정략결혼을 택했던 그가 답한다.

"말해봐. 행복이 뭔데? 대학까지 졸업했으니 행복이 뭔지 알 것 아니야?"
자리는 끝내 답하지 못한다.

비가 쏟아지던 그날 밤, 자리는 가족이 모두 잠든 틈을 타 집을 나간다.

이제부터 행복이 무엇인지 알아가겠다고 결심이라도 한 것처럼.
약 40년의 세월을 돌고 돌아 국내에 처음 개봉하는 영화 '해탄적일천'(1983)은 대만 거장 에드워드 양의 빛나는 시작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다른 곳에 시선을 돌리지 않고 오직 현대 대만인의 삶을 바라보는 데만 천착했던 양 감독의 데뷔작이다.

그의 주요 작품인 '타이페이 스토리'(1985),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1991), '하나 그리고 둘'(2000)처럼 이 영화 역시 관객의 끈기가 필요해 보인다.

2시간 46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때문만은 아니다.

감각을 자극하는 영화에 길든 요즘 관객에게는 느린 호흡의 서사와 담담하게 관조하는 듯한 카메라의 시선이 익숙하지 않아서다.

그러나 조금만 참을성을 갖고 주인공들의 삶을 들여다본다면,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순간 인간의 고독과 허무 그리고 성숙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영화는 13년 만에 재회한 자리와 웨이칭이 마주 앉아 대화하면서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피아노 교사를 하려 했던 웨이칭은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 급하게 유학을 떠났고 이후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됐다.

자리는 아버지가 정해준 남자와의 결혼을 거부하고 대학 시절부터 사귄 남자친구 더웨이(데이비드 마오)와 결혼한 상태다.

대만 거장 에드워드 양의 반짝이는 첫 작품…영화 '해탄적일천'
사랑하는 이와 결혼했으니 행복해지는 게 당연한 수순 같지만, 불행히도 자리의 삶은 그러지 못했다.

세련된 이 도시 여자의 속살은 공허함으로 가득하고 사랑에 갈급하다.

결혼생활은 처음에는 순탄한 듯했으나 남편 더웨이는 점차 일에만 매달리고 자리는 뒷전이 된다.

자리는 함께 행복해지자고 끊임없이 말하지만 더웨이는 그런 자리를 이해할 수 없다.

지쳐가던 더웨이는 바람까지 피우고 자리와 추억이 깃든 바닷가에 항우울제 약병을 남겨둔 채 실종된다.

자리와 빛나는 시절을 함께 보냈던 가족, 친구의 삶도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승승장구하던 의사 아버지는 운영하던 병원이 쇠락하며 눈에 띄게 약해지고 죽음을 맞는다.

오빠 역시 암 투병을 하다 젊은 나이에 죽는다.

절친한 친구 신신은 싱글맘이 됐다.

영화 초반부 천진하고 충만해 보였던 이들의 모습과 대조하면 너무나 낯선 결말이지만, 이런 예측 불가능한 삶을 통해 자리는 한 인간으로 성장한다.

불행을 하나하나 밟아가면서 또 다른 불행이 와도 의연하게 마주할 수 있는 어른으로.
이야기를 마치고 돌아가는 자리를 바라보며 웨이칭이 하는 독백이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말이 아닐까.

"중요한 건 그 소녀가 자라서 완벽한 여인이 됐단 것이다.

"
내년 1월 6일 개봉.
대만 거장 에드워드 양의 반짝이는 첫 작품…영화 '해탄적일천'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