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만에 1심 결론…작년 행정소송 1만 2천건 중 1개월 내 판결 22건뿐
"명백한 오류…정답 고를 수 있게 문제 구성해야" 평가원 잘못 지적
법원, 생명과학Ⅱ '초고속 판결'로 혼란 마침표
법원이 이례적으로 빠른 판결을 선고해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과학탐구영역 생명과학Ⅱ 출제오류 논란과 이를 둘러싼 혼란에 마침표를 찍었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이주영 부장판사)는 이날 생명과학Ⅱ 응시자 92명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하 평가원)을 상대로 낸 20번 문항 정답 결정 처분 취소 소송을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이번 판결은 지난 2일 수험생들이 행정소송을 제기한 지 13일 만에 나왔다.

행정소송 접수부터 1심 판결까지 일반적으로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 동안 이어지는 것을 고려하면 이례적으로 빠른 결론이다.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법원 행정소송 1심 평균 처리 기간은 판결(본안 소송) 291.4일, 기타(집행정지 등 신청 사건) 192.5일에 달했다.

특히 본안 소송의 경우 지난해 총 1만2천여 건이 접수됐으나 1개월 안에 선고된 사건은 단 22건에 그쳤다.

재판부는 소송 접수 8일 만인 지난 10일 변론기일을 열어 곧바로 선고 기일을 일주일 뒤인 17일로 지정했으나 일정을 이틀 앞당겨 이날 판결을 내렸다.

'빠른 결론'을 내리는 데 얼마나 신경 썼는지 읽히는 대목이다.

재판부는 소송 본안뿐 아니라 판결 선고 전까지 정답 결정의 효력을 중단하는 집행정지 결정도 접수 일주일만인 지난 9일 결론을 내렸다.

이처럼 법원이 이번 사건을 빠르게 처리한 것은 생명과학Ⅱ 출제오류를 둘러싼 논란이 그대로 대학 입시의 혼란으로 이어지는 점을 최대한 막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이번 사태로 생명과학Ⅱ 정답의 효력이 임시로 중단되면서 평가원은 이 과목 점수를 공란으로 둔 채 수능 성적통지표를 배부했다.

교육부는 당초 이달 16일까지 수시전형 최초 합격자를 발표하도록 할 예정이었으나 이번 사태로 18일로 연기했다.

여기에 더해 당장 1월 초 정시전형 원서 접수가 마감되는 점을 고려하면 자칫 법원 판결이 1∼2주만 늦어도 입시 혼란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법원, 생명과학Ⅱ '초고속 판결'로 혼란 마침표
아울러 재판부는 일반적으로 주문만 낭독하는 다른 행정소송 판결과 달리 이날 법정에서 판단 이유를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평가원 주장의 오류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먼저 재판부는 "문제에서 제시한 조건을 사용해 계산하면 특정 유전자형의 개체 수가 음수(-)로 나타난다"며 "생명과학의 원리상 동물 집단의 개체 수가 음수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평가원은 재판에서 "일부 조건이 불완전하더라도 정답 선택과는 무관하다"고 항변했지만, 재판부는 "정답을 유지하면 수험생들은 앞으로 과학 원리에 어긋나는 오류를 발견해도 출제자의 실수인지 의도된 것인지 불필요한 고민을 해야 한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히 재판부는 "수험생들은 피고가 의도한 풀이 방법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아도 충분한 논리성·합리성을 가진 풀이 방법을 세워 문제 해결을 시도했다"며 "출제자는 수험생들이 논리성·합리성을 갖춘 풀이 방법을 세워 문제 해결을 시도한 경우 정답을 고를 수 있도록 문제를 구성해야 한다"고 평가원의 잘못을 지적했다.

평가원은 이번 판결 직후 항소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강태중 평가원장이 사태에 책임지고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