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운명 가를 EU 결정 앞두고 유럽 국가들 양분

원자력 발전을 '지속가능한 친환경 에너지'로 분류하는 문제에 대한 유럽연합(EU)의 결정이 임박한 상황에서 탈원전을 이끄는 독일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원전 확대로 돌아선 프랑스가 시각차를 노출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크리스티안 린트너 신임 독일 재무장관은 13일(현지시간) 올라프 숄츠 내각 출범 이후 처음으로 프랑스 파리를 방문해 브루노 르메르 프랑스 재무장관과 양국 간 현안을 논의했다.

'원전은 친환경 에너지인가' 독일-프랑스 시각차
양국 장관은 회담을 앞두고 경제·재정 정책, 금융시장 규제 등 대부분 현안에 대해서는 대체로 견해가 일치했지만 원자력 발전과 관련해서는 좀처럼 타협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르메어 장관은 린트너 장관과의 만찬을 앞두고 기자들에게 "(원자력 발전과 관련한 협의에서는) 갈 길이 멀다.

우리는 아마도 이 문제를 제쳐 두고 술이라도 한잔해야 타협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린트너 장관 역시 "원자력은 '어려운 논쟁거리'로 독일의 정치적 문제와도 연관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원자력 문제와 관련한 양국 정부, EU 집행위원회 사이의 대화가 모든 당사자에게 좋은 해결책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덧붙였다.

내년 상반기 EU 순회 의장국을 맡는 프랑스는 지속가능한 투자처를 규정하기 위한 EU의 새로운 '그린 택소노미'(Green Taxonomy·녹색 분류체계)에서 원자력 발전이 친환경 에너지로 분류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유럽 내 탈원전에 앞장서고 있는 독일은 EU 자금이 태양이나 풍력 등 친환경 에너지를 지원하는 데 사용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도좌파인 사민당 소속의 숄츠 총리가 환경을 중시하는 녹색당 등과 손잡고 출범시킨 독일 새 정부는 원전 비중을 줄이고 친환경 에너지를 확대한다는 게 정책의 기조다.

숄츠 총리는 지난주 파리를 방문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원전에 대한 프랑스와 독일의 의견 차이에 관한 질문을 받았지만 즉답을 피한 바 있다.

'원전은 친환경 에너지인가' 독일-프랑스 시각차
현재 원자로 56기를 가동하는 프랑스는 전 세계에서 인구 대비 원자로 개수가 가장 많은 '원전 강국'으로, 국내 전력 생산의 약 70%를 원전에 의존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에너지 자립과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신규 원자로 건설을 재개하겠다고 최근 발표하고 원자력 발전에 더 힘을 싣고 있다.

EU가 원자력이 탄소배출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재생가능한 친환경 에너지로 분류하면 투자자와 금융 조달이 쉬워져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사양길에 접어든 것으로 보였던 원전 산업은 새로운 발전의 전기를 맞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까닭에 프랑스는 핀란드, 체코,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크로아티아, 불가리아, 슬로베니아 등 친(親)원전 국가들을 규합해 EU가 그린 택소노미에서 원전을 친환경 에너지로 분류해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독일을 필두로 오스트리아, 덴마크, 포르투갈, 룩셈부르크 등은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의 사례와 같은 사고 위험과 핵폐기물 문제 등을 거론하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원전을 둘러싸고 EU가 양분된 모양새다.

한편,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EU는 오는 22일 원자력 발전의 친환경 에너지 분류 여부를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