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개국 여행 중 경유…도전 성공 시 여성 최연소 기록
"코로나·기상악화에도 포기 안 해…여성으로서 사회 통념 극복"
'경비행기 세계일주' 19세 여성 한국 들러…"'오겜' 놀라워"
11일 오후 4시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텅 빈 김포공항 입국장.
주황색 비행복 차림에 분홍색 나이키 운동화를 신은 앳된 얼굴의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경비행기로 세계일주 단독비행에 도전 중인 벨기에·영국 국적의 비행사 자라 러더포드(19)였다.

그는 러시아에서 동남아로 넘어가는 중간 기착지로 한국 김포공항에 착륙했다.

지난 8월 18일 벨기에에서 출발한 그는 내년 1월 중순까지 총 52개국 하늘을 날면서 4만km 넘게 비행할 예정이다.

그동안 영국과 그린란드, 미국, 멕시코, 콜롬비아, 캐나다, 러시아 등을 거쳤다.

러더포드는 공항에서 연합뉴스와 만나 "한국에 와서 너무 행복하다.

한국에 대해 좋은 얘기를 많이 들어 기대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을 경유지로 선택한 다른 이유에 관해 중국은 코로나19 상황으로 착륙이 거부됐고 일본도 경비행기 착륙은 안 된다는 규정을 들었다고 했다.

그는 한국 문화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글로벌 히트를 기록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을 가장 먼저 언급하기도 했다.

"'오징어 게임',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 드라마 '스카이 캐슬'을 아주 재밌게 봤어요.

놀라운(amazing) 작품들이었죠. 또 한국은 기술적으로 굉장히 앞선 나라라고 알고 있어요.

한국 음식도 한번 먹고 싶었고요.

(웃음)"
그는 13일 전남 무안에서 이륙해 대만 타이베이로 이동한 뒤 필리핀, 태국 등 아시아를 횡단할 계획이다.

동남아를 벗어난 뒤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그리스 등을 거쳐 다음 달 14일 다시 모국 땅을 밟을 예정이다.

그가 목표대로 세계일주에 성공하면 샤에스타 웨이스가 보유한 여성 최연소 기록을 11년이나 앞당기게 된다.

트래비스 러들로가 세운 남성 최연소 기록(18세)과의 격차도 대폭 줄어들게 된다.

러더포드는 "여성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저를 통해 여자들이 비행을 좋아하게 되거나, 이미 비행을 좋아하는 여자들도 '나 같은 여자가 한 명 더 있네'라고 생각해준다면 제 임무는 완성이에요.

기존에 남자 파일럿이 많기 때문에 사회 통념상 튄다는 점을 극복하려 했어요.

사회적인 롤모델 때문에 힘든 점이 있었지만 그걸 극복해왔죠."
그는 세계 누리꾼들과 비행 현황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홈페이지에서도 "남자아이들은 용감해지라고 격려받아 과학자나 우주 비행사를 꿈꾸지만 여자들한테는 우아해지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전 세계 민간 비행사의 5%, 컴퓨터 과학자의 15%만이 여성"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는 "뭔가 좀 멋진 일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초경량 항공기인 '샤크 울트라라이트'에 몸을 실었지만, 비행 과정은 상상 이상이었다고 했다.

기상악화 때문에 아찔했던 상황은 종종 있었고, 멕시코와 콜롬비아에서는 폭풍우를,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대형 산불과 만났다.

"알래스카에서는 날씨가 안 좋아서 한 달 동안 갇혀 있기도 했어요.

따뜻한 봄까지 3∼4개월 비행을 연기해야 하나 고민한 적도 있었죠. 러시아에서 한국으로 올 때는 북한을 피하고자 중국으로 오려 했다가 코로나19로 거부당하면서 굉장히 우회했어요.

가는 곳마다 코로나19 검사를 받았고요.

여기에 기류 변화까지 더해지면 굉장히 어려운 순간이 많았지만 그래도 '그만둔다'는 생각은 해본 적은 없어요.

그때그때 현명하게 판단하면서 적절히 대응해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폭풍우도, 산불도, 영하 30도의 추운 러시아를 하늘에서 본 것도 기억에 많이 남네요.

"
군 헬기 조종사 출신인 아버지와 조종사 자격증을 가진 변호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러더포드는 14세 때 처음 비행기 조종간을 잡았고 지난해 조종 면허를 땄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파일럿 자격증을, 슬로바키아와 프랑스에서는 경비행기 운전면허를 취득했다.

그는 "운이 좋은 환경에서 자라났다.

파일럿 집안에서 태어나 이 도전이 가능했다는 비판도 이해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부모님은 이 여행에 비용을 분담한 것이 전혀 없고 그 비용을 감당할 형편도 안 된다.

100% 후원을 통해 이 여행이 이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세계 기록을 세우고 나면 무엇을 하고 싶냐는 물음에 그는 "일단 좀 쉬고 싶다"면서도 금세 학구열을 내비치며 눈을 반짝였다.

"내년 9월에는 대학에 진학해서 전기공학을 전공할 예정이에요.

많은 여학생이 비행과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에 관심을 두게 하고 싶어요.

"
'경비행기 세계일주' 19세 여성 한국 들러…"'오겜' 놀라워"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