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다음 달 1월 2단계 DSR 규제에서는 총대출액(신청액 포함)이 2억원을 초과하면 무조건 DSR이 40%를 넘는지 따지기 시작한다.
DSR 산정시 신용대출의 상환 만기도 7년에서 5년으로 짧아져 대출자 입장에서는 대출 여력이 더 줄어든다.
내년 7월 3단계까지 시행되면, 총대출액이 1억원만 웃돌아도 DSR 규제를 받는다.
A은행의 시뮬레이션(모의실험)에 따르면, 연소득이 5천만원이면서 5천만원 한도의 마이너스통장(신용 한도대출)을 터놓은 대출자가 서울 지역 6억원짜리 아파트를 담보로 현재 대출을 신청하면 최대 2억4천만원(6억원×LTV 40%)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내년 1월 이후 이 대출자는 같은 조건에서 주택담보대출로 지금보다 약 9천만원 적은 약 1억5천만원만 빌릴 수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특히 고소득·고신용자들이 현재 주택 관련 고액 대출을 많이 보유한 상태이므로, 주택 관련 대출이 없는 중·저신용자보다 DSR 강화에 따른 대출 한도 축소를 더 체감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국과 은행권은 대출 실수요자 대책의 하나로 다음 달부터 결혼·장례 등 특수한 사정이 인정되면 연 소득을 넘는 신용대출도 허용하기로 했지만, 이런 특별대출 역시 DSR 산정 대상에는 포함되기 때문에 실제 대출 한도 증액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다는 게 은행권의 분석이다.
◇ 가계대출 중 67% 차지하는 전세대출 다시 관리 대상 더구나 내년부터 다시 전세자금대출도 은행 가계부채 총량 관리 대상에 포함되기 때문에, 은행은 가계대출 증가 속도를 조절하는데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지난 9월 이후 당국과 은행권이 강하게 가계대출을 억제하면서 실수요 세입자들의 반발이 커지자, 당국은 "올해 4분기 신규 전세자금대출은 총량 관리 대상에서 제외해주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해가 바뀌어 다음 달 1일부터는 한시적 조치가 끝나고 다시 전세자금대출도 관리 대상에 포함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1월 말 기준 은행권 가계대출은 10월 말보다 3조원 늘었는데, 전세자금대출이 이 가운데 무려 67%인 2조원을 차지했다.
올해 전체 평균으로도 5대 은행에서 늘어난 가계대출의 약 절반은 전세자금대출이었다.
따라서 전세자금대출을 포함해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을 4.5% 안에서 맞추는 일은 은행 입장에서 쉽지 않은 과제다.
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 10일 국회에서 가계부채 당정 협의를 마치고 "내년 서민 실수요자 대출, 전세대출, 집단대출은 최대한 중단되지 않고 지속 가능하게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지만, 구체적으로 전세자금대출의 관리대상 제외 연장 등의 방안은 언급되지 않았다.
◇ 은행권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 3%미만…"내년엔 성장 기회" 하지만 이런 대출 한파 속에서도 지금까지 은행권에 접근하기 어려웠던 중·저신용자의 가계대출 문은 내년에 다소 넓어질 가능성이 있다.
고소득·고신용자들은 상대적으로 대출 받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의미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지난 3일 기자간담회에서 "중·저신용자에 대한 대출, 정책서민금융 상품에 대해서 최대한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대출 중단이 없도록 체계적으로 관리하겠다.
(중·저신용자 대출, 정책서민금융을) 대출 총량 관리 한도에서 제외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구체적 인센티브에 대해서는 금융권과 협의를 거쳐 12월 중 확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중·저신용자의 기준이 다소 모호한데, 지난 4∼5월 당국의 자료 등에 언급된 중·저신용자는 대체로 '신용평점 하위 50%(신용등급 4등급 이하)' 대출자를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 기준에 따라 연합뉴스가 올해 들어 11월 말까지 5대 은행의 중·저신용자 대상 신용대출 실적을 조사한 결과, 각 은행의 전체 가계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게는 약 2%, 커야 약 3% 수준에 불과했다.
이처럼 시중은행은 지금까지 상대적으로 부실 위험이 큰 중·저신용자 대출(대출금리 약 5∼6.5% 수준)을 거의 취급하지 않았지만, 만약 당정 협의 등을 거쳐 총량 관리에서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면 중·저신용자 대출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재근 차기 KB국민은행장 후보(현 영업그룹 이사부행장)는 지난 4일 "내년에는 가계대출이 4.5% 이하로 성장해야 한다"며 "가계대출 성장을 제한하는 것은 우량 고객들 대상이고, 7등급 이하 저소득, 저우량 고객들에게는 한도가 열려 있다"고 이런 은행권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그쪽(저소득·저우량 고객)에서 성장의 기회를 탐색하려면, 이제 CSS(크레딧 스코어링 시스템·신용평점제도) 모델을 정교화해서 7, 8등급 고객이라도 선택적으로 지원할 부분을 어떻게 찾아내느냐, 이게 이제 은행 간 성과 차별화의 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도 "내년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 4.5%는 자연 증가분만로도 금방 채워질 것"이라며 "줄어드는 이자이익을 메우기 위해 은행들이 중·저신용자 대상 영업에 나설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회의적인 시각도 많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최근 집값과 가계대출 급등세가 다소 진정된 상황에서 정부가 내년 가계대출 규제를 이른 시일 내 완화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며 "그렇다고 중·저신용자 대출 규모를 갑자기 크게 늘릴 수는 없다.
은행 건전성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늘리더라도 CSS를 정비해 옥석을 가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