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페이퍼컴퍼니(서류상 회사)를 통한 돈세탁을 근절하기 위해 칼을 빼들었다. 유령회사의 설립자와 대표뿐만 아니라 실소유주를 알 수 있도록 관련 정보를 공개하도록 했다.

CNBC는 7일(현지시간) 미 재무부가 기업 활동 없이 명의만 있는 셸컴퍼니의 실소유주를 보고하는 법안 제정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돈세탁방지법을 마련한 데 이어 이번엔 유령회사의 실소유자 정보를 제출하도록 하는 새로운 규칙을 제정했다. 이 규칙은 60일간의 여론 수렴 기간을 거쳐 내년 2월 초 시행할 예정이다.

미국에서는 그동안 유한회사 형태로 설립된 수많은 유령회사는 실소유주가 누구인지를 공개하지 않아도 됐다. 기업 지분구조 신고 의무도 없었다. 이로 인해 유령회사가 재산 은닉과 테러자금 마련 같은 범죄에 악용되기도 했다.

델라웨어주 와이오밍주 등에선 유한회사에 대한 공시를 거의 요구하지 않아 셸컴퍼니의 온상이 됐다. 예를 들어 국제 마약 밀매업자들이 신분을 밝히지 않고 조세피난처인 파나마 은행계좌에서 셸컴퍼니를 통해 다른 조직원에게 자금을 제공할 수 있다.

새로운 규칙이 시행되면 유령회사를 통한 마약 관련 자금 중개와 돈세탁이 어려워질 것으로 재무부는 보고 있다. 기업이 실제 소유주를 밝혀야 하기 때문이다. 회사를 장악하고 있는 사람이나 지분율 25% 이상 주주들이 공개 대상이다. 구체적으로 회사의 소유주 이름과 생년월일, 주소 등을 작성해 관련 기관에 제출해야 한다.

새 규정이 시행되기 전 설립된 법인은 1년 안에 관련 자료를 내야 한다. 이 규정이 적용된 뒤 생긴 법인은 14일 안에 관련 서류를 제출하도록 했다. 재무부는 규칙 변경으로 추가로 드는 비용은 회사당 50달러 수준일 것으로 추정했다.

재무부는 성명을 통해 “미국에선 매년 수백만 개의 회사가 설립된다”며 “이 기업들이 미국 경제에서 핵심 역할을 하지만 불법 활동의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규칙을 통해 유령회사가 부패와 마약, 불법 무기 거래, 테러 등과 같은 범죄를 통해 벌어들인 자금을 세탁하는 데 쓰이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히마마울리 다스 재무부 국장대행은 “이번 조치가 미국의 안보와 공정성을 해치는 허점을 막고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보호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