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차은우·서강준. 사진=한경DB
왼쪽부터 차은우·서강준. 사진=한경DB
"'얼굴 천재' 차은우 같은 눈매를 갖고 싶어요."
"서강준 코 가능한가요?"
최근 성형외과에 이 같은 문의를 해오는 남성 환자들이 늘었다. 지난 7일 오후 찾은 서울 강남 압구정역 인근 한 성형외과에는 꺼진 이마를 봉긋하게 만드는 수술을 하고 나오는 30대 남성부터 수능이 끝나고 코 성형 상담을 기다리는 10대 남학생까지 남성들 발길이 심심찮게 이어졌다. 대기실에 있던 7명 가운데 4명이 남성이었다.
서울 강남구 성형외과 밀집지역의 모습. /뉴스1
서울 강남구 성형외과 밀집지역의 모습. /뉴스1
성형수술은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10여년 전만 해도 수능이 끝나면 고3 여고생들이 쌍거풀 수술을 하러 성형외과에 몰려들었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최근 성형업계에서 '떠오르는 고객'으로 남성을 꼽을 정도다.

남성들도 이제 능력뿐 아니라 외모도 경쟁력으로 작용하는 분위기가 커져서다. 패션이나 미용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남자들을 가리키는 '그루밍족'이 늘어나는 분위기다. 여성들이 '탈(脫)코르셋'(화장, 몸매 등 여성에게 강요된 미적 기준을 벗어나자는 것) 운동이 확산하면서 성형이나 미용, 뷰티 등의 수요가 주춤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차은우·서강준처럼…성형하는 남자들

한 인터텟 포털사이트의 남성 성형 관련 카페는 회원 수가 6만명에 육박한다. 강남에 있는 성형외과 10곳에 문의했더니 모든 병원에서 "남성 고객 확장세가 두드러진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신사동에 위치한 H성형외과에 따르면 남성 성형 고객 비중이 10여년 전에는 10%도 안 됐는데 지난해엔 37%까지 늘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성형외과 원장은 "20년 전엔 국내 여성 환자들, 10년 전엔 성형 한류붐으로 중국인 등 외국인 관광객이 주요 고객층이었다"면서 "최근엔 남성들이 주요 잠재 고객으로 떠올랐다. 사실상 여성 고객들의 성형 수요는 어느 정도 충족했지만 남성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고 파악된다"고 설명했다.
 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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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로 일하는 30대 중반 김모 씨도 두 달 전 이직을 하는 과정에서 생긴 휴가 기간을 틈타 양악 수술을 했다. 결혼 적령기가 돼 자연스럽게 외모에도 관심이 갔다고 했다.

그는 "열심히 공부하고 일 하면서 커리어도 쌓았고 조그맣지만 '내 집 마련'에도 성공했지만 번번이 소개팅에 실패했다. 외모를 가꿔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면서 "프로필 사진을 종종 찍게 되는데 그때마다 눈에 거슬리던 점을 휴식 기간을 틈타 보완했다. 요즘은 남자 외모도 경쟁력인 시대 아니냐"고 했다.

남성 명품매장 "입고 첫날 대부분 다 팔려"

화장하는 남성도 늘었다. 남성 화장품 시장이 뷰티업계의 '블루오션'으로 떠오른 것은 이미 오래됐다. CJ올리브영에 따르면 남성 소비자의 뷰티 제품 구매액(1분기 기준)은 지난 3년간(2019~2021년) 연평균 28% 증가했다. 피부 관리를 위한 기초 화장품을 비롯해 메이크업 쿠션, 컬러 립밤 등 남성 전용 색조 화장품 수요가 늘고 있다.

유행에 가장 민감한 산업군으로 꼽히는 백화점 업계가 공을 들이는 영역 역시 '남성 명품' 분야다. 최근 20~40대 남성 중심으로 패션에 관심이 높아지고 해외 명품 브랜드 소비가 급증하자 남성 전용 매장을 새롭게 선보이고 있다.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5층 남성 해외 패션 매장. /한경DB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5층 남성 해외 패션 매장. /한경DB
롯데백화점은 서울 소공동 본점 5층 전체를 할애해 남성 고객을 위한 해외 패션 브랜드를 속속 입점시키고 있다. 이 곳엔 톰포드, 돌체앤가바나, 발렌티노, 루이비통 맨즈 등 젊은 남성들이 선호하는 명품 브랜드들이 즐비하다. 현대백화점도 서울 압구정 본점 4층 전체를 남성 전용 '맨즈 럭셔리관'으로 조성했다. 구찌 맨즈, 발렌시아가 맨즈, 로로피아나 맨즈, 프라다 워모, 루이비통 등 명품 브랜드로 채웠다.

백화점들 전략이 먹혀들면서 남성 명품 매장들은 물건이 입고되는 첫날 매장을 방문하지 않으면 원하는 상품을 구매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객층이 늘었다.

서울 강남에 위치한 한 루이비통맨즈 매장에선 7일 오전 기준 남성 고객 수요가 가장 많은 270㎜짜리 신발은 한 켤례도 남아 있지 않았다. 티셔츠도 수요층이 거의 없는 XXXL 등 특대 사이즈를 제외하면 구매 가능한 제품이 없었다. 매장 관계자는 "대부분 제품이 입고 되자마자 팔려나간다"고 귀띔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