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얼 퍼거슨의 인류 재난 고찰서 '둠 재앙의 정치학'

지구 종말론(終末論)은 인류 역사에서 주기적으로 출몰했다.

종교계의 종말론이 대표적 사례로, 특히 유대교와 기독교 같은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에서 횡행해왔다.

현대적 종말론은 어떠한가.

과학의 발달로 종교적 종말론은 그 여지가 크게 좁아졌지만, 대신에 핵무기, 생물무기 등 인간이 자초한 종말론의 위험이 곳곳에 도사린 채 고개를 내밀고 있다.

지구촌을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19가 시나브로 종말론을 떠올리게 한다.

21세기 들어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등 여러 호흡기 감염병 사태를 겪었지만 코로나19는 강한 전염력으로 인류를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발생한 지 벌써 2년이 다 돼간다.

"나는 팬데믹뿐 아니라 지진과 같은 지질학적 참사에서 전쟁 등의 지정학적 참사까지, 또 생물학적 참사에서 기술적 참사 등에 이르기까지 온갖 종류의 재앙들을 폭넓게 다루며 일반사를 쓰고자 한다.

"
영국 출신의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 박사는 저서 '둠(DOOM) 재앙의 정치학'의 서문에서 집필 취지를 이같이 밝힌다.

1985년 옥스퍼드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현재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연구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세계사적 시점에서 경제위기 등을 학술적으로 예측해 주목받아왔다.

'광장과 타워', '금융의 지배', '증오의 세기' 등의 저서로 인류사적 문명의 흐름을 짚어온 박사는 이번 책을 통해 코로나19로 신음하고 있는 범지구적 상황에서 고대 로마의 폼페이, 중세의 페스트, 현대의 코로나19 유행까지 재앙의 역사를 돌아본다.

책은 한국어 번역서로 750여 쪽에 이를 만큼 분량이 방대하다.

퍼거슨 박사는 인류에게 종말론을 연상시킨 과거의 전염병이나 전쟁을 소재로 한 문학 또는 회화 작품을 통해 재난과 재앙이 갖는 의미를 보여주는 한편, 근대 이후 과학의 발달에도 인류의 소망과 달리 재난을 완벽히 예방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분명한 건 앞으로도 재난은 반복될 것이고, 선진화한 정치 시스템이나 최첨단 기술을 보유하더라도 재난을 완벽히 예측하고 대응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인류가 재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회복 재생력과 함께 위기에 강한 사회·정치적 구조를 만드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인류사를 보면 과학혁명이 일어나기 전이었던 르네상스 시절에도 전염병에 대응키 위해 자가격리, 사회적 거리두기 등 조치를 시행했다.

저자는 정보기술과 교통수단이 발달하며 빠르게 변화하는 국제적·지역적 네트워크를 간과한다면 또 다른 전염병과 재앙을 효과적으로 막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의학적 대처 못지않게 '비의학적 대처' 또한 매우 중요하다는 얘기다.

코로나19보다 먼저 시작됐고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미-중 갈등 또한 지구적 재앙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만약 두 나라의 패권 경쟁이 전면전으로 비화한다면 20세기에 펼쳐진 미국과 소련 간의 냉전 위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파멸을 초래할 수 있어서다.

무역과 기술, 정치 영역의 양국 갈등이 심해지는 와중에 터진 코로나19는 미국의 정치와 사회 시스템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했고, 세계적 학자들은 이를 미국의 몰락과 중국의 부상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간주했다.

저자는 코로나19 백신 개발, 인공지능 등 기술적 수준으로 봤을 때 미국이 세계에서 여전히 지배적 위치를 유지할 것이며 이를 중국이 이른 시일 안에 뛰어넘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오히려 중국의 부상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담론 자체가 미국의 위기감을 불러일으켜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퍼거슨 박사는 '차이메리카(Chmerica)'라는 용어로 중국과 미국의 공생관계를 설명해냈고,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관한 수정주의 시각으로 유명하다.

홍기빈 옮김. 21세기북스 펴냄. 752쪽. 3만8천원.
종말론적 지구 재난들…"회복재생력으로 극복해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