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KLPGA 제공
사진=KLPGA 제공
'즐기는 천재'는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 김효주(26)가 31일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SK네트웍스·서울경제 레이디스 클래식(총상금 8억원)에서 최종합계 14언더파 274타로 국내 투어 시즌 2승을 따냈다. 이소영(24)이 이날 하루에만 8타를 줄이며 맹추격했지만 1타차로 제치고 우승했다.

김효주는 이날 제주도 서귀포 핀크스GC(파72)에서 열린 대회 최종라운드에서 버디 6개에 보디 2개를 적어내 4언더파 68타를 쳤다. 그는 주니어 시절부터 두각을 드러내며 '골프천재'로 불렸다. 2012년 KLPGA 투어 데뷔 첫 해 우승을 따냈고 이듬해 KLPGA 신인왕에 올랐다. 2014년 한해에만 5승을 올렸고 비회원 자격으로 출전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 대회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직행 티켓을 따냈다. 이듬해 LPGA 투어에서 2승을 추가하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골프천재도 슬럼프를 피해갈 수 없었다. 2016년 퓨어실크 바하마 LPGA 클래식 이후 우승소식이 끊겼고 김효주 특유의 컴퓨터 샷이 흔들린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해 코로나19로 LPGA 투어가 중단되자 김효주는 국내로 눈을 돌려 반전의 계기를 만들어냈다. 두 번의 우승과 함께 상금왕을 차지했고 평균타수 1등도 차지했다.

올 시즌 김효주는 '천재의 귀환'을 알렸다. 지난 5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HSBC 위민스 월드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5년 4개월만에 LPGA 투어에서도 우승본능을 되살렸다. 지난 9월에는 OK저축은행 박세리 인비테이셔널에서 KLPGA 투어 시즌 첫 승을 올렸다.
이번 대회에서도 김효주 특유의 뒷심이 빛을 발했다. 대회 첫날 공동 18위로 시작했던 그는 2라운드에서 공동 6위로 단숨에 상위권으로 뛰어올랐다. '무빙데이' 3라운드에서는 보기 없이 버디만 5개 잡아내며 1타차 단독선두로 올라섰다.

최종라운드를 앞두고 김효주는 "즐기는 골프를 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말처럼, 이날 김효주에게서는 챔피언조의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티샷에서 동료들을 챙기며 분위기를 띄웠고, 유해란(20)의 샷으로 생긴 디봇을 챙기는 등의 여유도 보였다.

경기 내용도 좋았다. 1번홀(파4)에서 버디를 잡아내며 기분좋게 스타트를 끊은 뒤 5번(파3)과 6번홀(파4)에서 연속 버디로 순식간에 4타 차까지 달아났다. 2위 그룹과 3타차 이상 선두를 달리던 그에게 비상이 걸린 것은 후반전부터다. 후반 시작과 함께 조금씩 샷 미스가 생기며 타수를 더 줄이지 못했고 12번홀(파4)에서 티샷 미스가 나면서 보기를 기록했다.

13번홀(파4)에서 버디를 잡아내며 분위기를 반전시키는데 성공했지만 그사이 추격 속도를 높인 이소영에게 공동선두를 허용했다. 전반에만 3타를 줄인 이소영은 후반에 보기 없이 버디만 5개 잡아내며 공동선두로 경기를 마쳤다.

그래도 김효주는 흔들리지 않았다. 이소영과 동타 상황에서 파세이브를 이어가던 김효주는 17번홀(파3)에서 천금같은 버디를 잡아냈다. 티샷이 그린 옆 프린지에 자리잡았고 약 10m거리의 롱퍼팅을 성공해내며 1타차로 달아났다. 이후 이번 대회 최고 난도로 꼽히는 18번홀(파4)을 파로 마치며 우승을 차지했다.

김효주는 "대회 초반 스코어에 아쉬움이 많았다. 우승보다는 제가 목표로 하는 스코어를 달성하기 위해 집중하고 쳤다"고 밝혔다. 이소영의 맹추격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비결에 대해 "우승을 노렸다면 긴장했을 것이다. 하지만 제가 목표한 스코어를 달성하지 못해서 그것에만 집중하려 했고 자신감을 갖고 경기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내에서 일주일 가량 휴식을 취한 뒤 LPGA 투어 시즌 마지막 대회인 CME그룹 챔피언십으로 올 시즌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김효주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 골프라 즐겁게 그 순간순간을 즐기고 집중하려고 한다. 즐겁게 하다보면 실수가 나와도 계속 재미있게 칠 수 있고 긴장감도 덜어지는 것 같다"며 '즐기는 골프'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임희정(21)은 합계 10언더파 278타를 쳐 3위, 이소미(22)와 이승연(23), 유해란(20) 등 3명이 공동 4위(9언더파 279타)로 대회를 마쳤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