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전달시스템(DDS)이 최초로 제안된 것은 1964년 하버드 의대 주다 포크먼(Judah Folkman) 교수에 의해서다. 그는 실리콘 튜브에 밀봉된 약물이 체내에서 일정한 속도로 방출되는 현상을 보고했다. 이후 60여 년이 지난 2020년, 코로나19 백신으로 메신저 리보핵산(mRNA)을 안전하게 세포 내로 전달하는 기술이 꽃을 피웠다. 1970년대부터 50여 년간 지속된 약물전달 연구는 1년, 5년, 혹은 50년 후 인류에게 어떤 선물로 돌아오게 될까.
[Cover Story - ANALYSIS] “Delivery, Delivery and Delivery!”
코로나19 mRNA 백신과 유전자 전달

작년 12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화이 자·바이오엔텍과 모더나의 백신을 코로나 19 백신으로 긴급사용 승인했다. 흥미로운 점은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이 기존과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mRNA 백신이라는 사실이다. 전통적인 백신은 대부분 약하거나 비활성화된 세균 혹은 단백질을 우리 몸에 넣어 면역반응을 유도한다.

하지만 mRNA 백신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스파이크와 같이, 면역 반응을 유도하는 단백질의 생성 방법을 우리 몸 안의 세포에게 가르치는 방식이다. mRNA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단백질은 자연 감염에서 일어나는 것과 유사한 면역 반응을 일으키고, 우리 몸이 항체를 만들도록 유도한다. 항체를 생성하는 면역반응을 통해 우리 몸이 향후 감염을 방어하는 방법을 배우게 하는 것이다.

맨 처음 mRNA가 유전자와 단백질 사이의 일시적인 매개체로 보고된 것은 1961년이다. 이후 최초의 mRNA 백신이 긴급사용승인 되기까지 반세기가 넘는 시간이 걸렸다.

그 동안 mRNA가 임상에서 사용되기 위해 여러 가지 기술적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혈액 내 존재하는 효소들에 의해 리보핵산(RNA) 구조가 쉽게 분해되는 데다, RNA와 세포막의 강한 음전하로 강한 정전기적 척력이 발생하면서 RNA의 세포 침투가 제한됐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게 한 것이 지질나노입자(LNP·Lipid Nano Particle) 기반의 약물전달기술이다.

유전자의 세포 내 전달 가능케 한 RNA 전달기술

약물전달기술의 역사는 짧은 간섭 RNA (siRNA·small interfering RNA)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mRNA 의약품은 원하는 단백질을 만들도록 지시하는 반면, siRNA는 특정 mRNA의 분해를 유도해 단백질의 발현을 억제한다.

1998년 siRNA의 RNA간섭(RNAi)이 최초로 보고된 이후, siRNA는 치료제가 없는 난치질환에 적용 가능한 치료기술로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세포 내부로 RNA를 안전하게 전달할 수 있는 유전자 전달기술이 없다는 한계에 부딪혔다. 이를 극복하지 못해 siRNA는 최초 보고된 이후 20년간 임상에서 사용되지 못했다. 많은 투자자와 제약회사들도 siRNA에 대한 희망을 버리고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siRNA가 최초로 <네이처>에 보고된 다음 해, 미국 솔크 연구소의 인더 버마(Inder Verma) 박사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유전자 치료에는 세 가지 문제가 존재한다. 그 세 가지는 ‘delivery, delivery and delivery’다.”

유전자 약물을 안전하게 세포 내부로 전달하는 것이 유전자 치료기술이 해결해야 할 유일한 문제라고 역설한 것이다.

2018년, 앨나일람이 20년간의 침묵을 깨고 siRNA 기반 유전성 아밀로이드증(hATTR) 치료제 ‘온파트로(Onpattro)’를 승인받았다. 최초의 RNA 치료제가 시장에 첫발을 디딜 수 있었던 것은 LNP 기반의 RNA 전달기술 개발 덕분이었다. 온파트로의 성공은 결국 2020년 mRNA 백신의 빠른 성공과 임상 사용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 됐다.

천연 보고와 최신 기술의 만남, 천연물 나노의약품

약물전달기술로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이 나노 의약품이다. 나노의약품을 임상에서 사용하는 것은 저분자 화합물 치료제를 암세포 내부로 안전하게 전달해 항암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췌장암 치료를 위한 약물전달 나노의약품 ‘아브락산(Abraxane)’이 대표적이다. 아브락산은 천연물 유래의 저분자 화합물 항암제 ‘파클리탁셀’을 혈액 단백질인 알부민(albumin)과 결합한 나노의약품이다. 파클리탁셀은 뛰어난 항암효과를 보이지만, 물에 대한 용해도가 매우 낮아 인체 적용이 어렵다. 이를 알부민과 결합해 수용성과 체내 안정성을 개선했다.

FDA는 2005년 전이성 유방암, 2012년 비소세포성 폐암, 2013년 말기 췌장암 치료를 위한 아브락산의 임상 사용을 승인했다. 2019년에는 삼중음성유방암 치료를 위한 항암 면역요법과의 병용 요법을 승인했다.
[Cover Story - ANALYSIS] “Delivery, Delivery and Delivery!”
약물전달을 위해 가장 많이 사용되는 나노 전달체는 LNP의 일종인 ‘리포좀(liposome)’이다. 2015년 전이성 췌장암 치료를 위해 승인받은 ‘오니바이드(Onyvyde)’는 리포좀의 체내 안정성을 개선한 페길화 리포좀(pegylated liposome) 내부에 천연화합물 캄토테신(camptothecin)의 프로드러그(prodrug) ‘이리 노테칸(irinotecan)’을 탑재했다.

1995년 최초로 임상에서 사용된 얀센의 ‘독실(Doxil)’도 리포좀을 전달체로 활용해 심장 독성을 크게 낮췄다. 독실은 페길화 리포좀 내부에 ‘독소루비신’을 봉입했다. 독소루비신은 뛰어난 항암효과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심장 독성으로 사용이 제한돼 왔다. 이후 ‘다우노솜(DaunoXome)’이 1996년 FDA로부터 임상 사용 승인을 받았다. 다우노솜은 ‘디우노루비신’의 페길화 리포좀 나노 제형이다.

국내에서는 삼양바이오팜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파클리탁셀의 고분자 마이셀(micelle) 나노 제형 ‘제넥솔(Genexol)’, 파클 리탁셀의 유도체 도세탁셀의 고분자 마이셀 나노 제형 ‘나녹셀(Nanoxel)’을 각각 2007년 과 2012년 승인받았다. 현재 미국과 유럽에서 임상을 진행 중이다.

온코TCS는 ‘빈크리스틴’의 페길화 리포좀 나노 제형인 ‘마퀴보(Marqibo)’를 2012년부터 미국에서 처방했다. 현재 나노의약품 20여 종이 임상에서 사용 중이며, 50여 종은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이 나노의약품이 자연에서 얻어진 천연화합물 혹은 그 유도체를 나노 약물 전달기술과 접목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천연화합물의 독성을 최소화하고 체내 안전성과 효능을 높였다.

태곳적부터 내려온 자연의 유산, 천연화합물과 인간이 개발한 최신 약물전달기술이 가장 치료하기 어려운 난치암종을 치료하기 위해 만난 상황이 조화롭게 느껴진다.

차세대 약물전달기술

그렇다면 앞으로 주목받을 차세대 약물전달 기술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가장 먼저 질환 조직을 표적화하는 나노의약품을 들 수 있다. 질환 조직 표적화 나노의약품은 기존에 돌고 돌아 질환 조직에 도달하던 나노의약품에 질환 조직을 찾아갈 수 있는 내비게이션을 추가로 장착했다고 비유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유전자 및 약물전달 제형과 나노 의약품들은 약물의 체내 안정성을 높이고 방출 속도를 제어하며, 세포 내 침투 효율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됐다. 그러나 최근 종양 조직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혈관의 불완전한 구조로 인해 기존의 나노의약품이 종양에 축적되는 현상(EPR 현상, 혹은 수동 표적화)에 관한 연구 보고가 이어지고 있다. 초기 나노의약품은 대부분 개발 당시 종양 표적화에 대해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의 질환 조직 표적화 나노의약품은 질환 조직의 표면 단백질을 찾아가서 결합하고 조직 내부로 침투하는 전략을 바탕으로 한다. 질환 조직 내 약물의 농도를 높이고 정상 조직에 대한 독성을 낮추기 위해 개발된 기술이다. 정상 조직에 쌓이지 않고 질환 조직에 선택적으로 축적돼 약물의 독성을 낮춰줄 뿐 아니라,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다.

메리맥파마슈티컬스가 개발한 유방암 표적 나노 제형 ‘MM-302’를 예로 들 수 있다. 독소루비신이 탑재된 페길화 리포좀 표면에 유방암 조직에서 발현되는 단백질 ‘HER-2’를 표적하는 항체를 도입했다.

바인드테라퓨틱스의 전립선암 표적 나노 제형 ‘BIND-014(DOPN201)’도 있다. 도세탁셀을 탑재한 고분자 나노제제의 표면에 전립선암 특이적인 ‘막단백질(PSMA)’ 표적인자를 도입했다.
비록 MM-302와 BIND-014 모두 임상시험 후 임상 사용 최종 승인을 받지 못했지만, 나노의약품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보여주는 바가 크다.

빛을 이용한 광치료 나노의약품 개발에도 주목해야 한다. 바슈롬이 개발한 ‘비수딘 (Visudyne)’은 황반하 맥락막 신생혈관증 치료를 위한 광 역학치료 나노의약품이다. 2000년 미국과 유럽에서 임상 사용 승인됐다.

비수딘은 리포좀 내부에 광감작제(photosensitizer) ‘베르테포르핀(verteporfin)’을 탑재해 빛을 받으면 활성산소를 방출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비수딘을 황반하 맥락막 신생혈관증 환자에게 정맥주사 하면 신생혈관증 병변에서 성장하는 혈관 내피세포에 쌓인다. 이후 외부에서 특정 파장(689nm)의 레이저를 병변에 쏘여주면 활성산소가 방출돼 혈관 내피세포에 손상을 주고 혈전 생성을 유도해 신생혈관을 막는다.

나노 스팩트라가 개발 중인 ‘오로레이즈 (Aurolase)’는 비수딘과 달리 빛을 이용해 열을 발생시키고, 열로 질환을 치료하는 광열 치료 나노의약품이다. 실리카 나노입자 표면에 금 박막을 씌우고 표면을 페길화해 특정 파장의 빛을 받으면 열이 발생되도록 고안됐다. 전립선암 부위에 이를 주사한 후 빛을 조사해 종양을 치료하는 임상을 진행 중이다.

이들 광역학·광열 치료 나노의약품은 빛을 받기 전까지는 독성 혹은 약효가 없지만, 빛을 받으면 치료 효능을 나타내는 자극 감응형(stimuli-activatable) 나노의약품의 좋은 사례다. 질환 부위를 정확히 알고 있고 질환 조직까지 빛이 접근할 수 있다면,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효과적인 치료를 보장할 수 있는 대단히 효과적인 치료 방법이다.

다만 빛에 반응할 수 있는 나노 제형을 질환 부위로 전 달하기 위한 질환 표적화 약물전달기술이 우선 확보돼야 한다. 또 질환 조직까지 충분한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는 광원의 개발이 필요하다. 이에 현재까지 피부에 인접한 질환 조직 혹은 내시경으로 도달할 수 있는 질환 조직에 대해 적용이 한정돼 있다.

세포, 단백질 유래의 바이오 나노의약품도 최근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여러 난치질환에 치료 효능을 보이는 줄기세포의 특징을 그대로 보전하면서 위험성은 최소화한 줄기세포 유래 세포 외 나노소포체, ‘엑소좀’이 대표적이다.

또 아브락산과 같이 단백질을 활용한 약물전달 나노의약품도 개발 중이다. 생체 적합성, 생분해성뿐만 아니라 단백질 고유의 특성을 활용해 약물 전달 효능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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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영
나노의약품 분야 전문가로 경희대학교에서 약학(약제학 전공)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이후 미국국립보건원(NIH)과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에서 박사 후 연구를 수행했다. 2018년부터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천연물연구소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며, 2020년부터는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바이오-메디컬 융합전공의 부교수를 겸하고 있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9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