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가 선보인 전용 전기차 EV6 롱레인지 GT라인 모델.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기아가 선보인 전용 전기차 EV6 롱레인지 GT라인 모델.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입 다물고 내 돈이나 가져가(Shut up and take my money)!" 빨간 자켓에 청바지를 입은 주황머리 청년이 돈다발을 흔들며 외치는 대사다. 미국 애니메이션 '퓨처라마'에서 주인공 프라이가 새 단말기를 사는 에피소드인데, 국내에서는 한 장의 이미지로 널리 공유된 탓에 '심슨 가족' 장면으로 잘못 알려져 있기도 하다.

3만5000여명이 "내 돈이나 가져가"를 외친 자동차도 있다. 애니메이션이 아닌 현실에서다. 기아가 선보인 전용 전기차 EV6는 출시 전까지 국내에서만 3만5000여건의 사전계약이 접수됐다. 직접 만나본 EV6 롱레인지 GT라인 4WD 모델은 기자도 혹하게 만들 정도로 매력있는 모델이었다. 차량 가격은 6049만원이며, 개별소비세와 친환경차 세제혜택을 반영하면 5680만원으로 낮아진다.
기아가 선보인 전용 전기차 EV6 롱레인지 GT라인 모델.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기아가 선보인 전용 전기차 EV6 롱레인지 GT라인 모델.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EV6는 날렵하면서도 약간 길쭉한 해치백 디자인을 가졌다. 같은 E-GMP 플랫폼을 탑재한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5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었다면, 같은 플랫폼으로 만든 세단인 셈이다. 전장·전폭·전고는 4695·1890·1550mm이며 축간거리는 2900mm다.

같은 브랜드 준대형 세단인 K8의 전장이 5015mm이며 축간거리가 2895mm인 점을 감안하면 그랜저보다 작지만 실내는 넓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축간거리 2885mm인 현대차 그랜저에 비해도 여유로운 실내가 기대됐다.
언플러그드 그라운드 성수에 전시된 기아 EV6.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언플러그드 그라운드 성수에 전시된 기아 EV6.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주차장에 세워놔도 이질감 없는 외관

우선 외관은 내연기관 자동차와 같이 둬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이질감이 없다. 기아 고유의 디자인 요소인 타이거페이스가 유지되면서 날렵한 주간주행등(DRL)이 세련된 인상을 만든다. 측면부에는 K8에 적용된 것과 유사한 사이드 가니쉬가 적용됐다. 주행 중에는 도어 속으로 숨고 승하차 할 경우에만 팝업되는 오토 플러시 핸들은 깔끔하면서도 미래적인 이미지를 줬다.

후면부는 사이드 가니쉬에서 이어지는 후미등이 차량을 길게 가로질러 자리했다. 얇고 긴 선 형태로 이어지며 하단에 빨간 네모가 수직으로 붙은 형태인데, K5·K7 등에 있었던 절취선 논란은 이제 잊어도 될 듯 하다. 후미등 아래에는 시퀀셜 타입 방향지시등을 겸하는 크롬 라인이 배치돼 볼륨감을 한층 살렸다.
언플러그드 그라운드 성수에 전시된 기아 EV6. 사진=기아
언플러그드 그라운드 성수에 전시된 기아 EV6. 사진=기아
실내는 내연기관차를 보듯 익숙한 구조를 갖췄다. 12.3인치 파노라믹 커브드 디스플레이가 자리잡았고 인포테인먼트·공조 전환 조작계도 K8, 스포티지 등에 적용된 터치식 디스플레이가 탑재됐다. 시동 버튼은 스티어링 휠 우측 뒷편이 아닌 센터 콘솔에 사선으로 자리를 잡았다.

실내도 내연기관차 타던 경험 '그대로'

다이얼 방식의 변속기와 시동 버튼이 장착된 센터콘솔은 스테인레스 재질로 마감됐고, 열선·통풍시트 버튼도 터치식으로 제공해 상당히 미래적인 인상을 풍겼다. 다만 이 부분이 기아가 EV6에 내연기관차와 같은 사용자경험(UX)을 제공하려 노력한 부분임을 쉽게 느끼게 해줬다. 센터콘솔을 길게 연장하면서 내연기관차와 유사한 운전 환경이 갖춰졌기 때문이다.

전기차는 미션이 없기에 센터콘솔을 짧게 만들 수 있다. 때문에 초기 등장한 전기차들은 운전석과 조수석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센터페시아와 센터콘솔 사이 공간을 비워둔 경우가 많았다. 이는 편리하지만 내연기관차에 익숙한 소비자에겐 이질감을 느끼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엠비언트 라이트가 작동하는 기아 EV6 운전석 모습.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엠비언트 라이트가 작동하는 기아 EV6 운전석 모습.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전기차임에도 센터페시아와 유기적으로 연결된 센터콘솔 구조는 약간 더 고급스러운 내연기관차의 느낌을 풍기며 운전자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센터콘솔 아래에는 수납공간이 추가됐고, 아직은 어색한 디지털 사이드미러도 EV6에는 빠졌다.

뒷좌석도 무릎 앞에 주먹 두 개는 여유롭게 들어갈 정도로 넉넉한 레그룸을 갖추고 있었다. 시트포지션이 약간 눕는 듯한 각도였는데, 공간이 넓은 덕에 적당히 다리를 펴고 쉬기 적당하다. 준대형 세단인 그랜저나 K8에 밀리지 않는 공간감이었다.
축간거리 2900mm인 기아 EV6는 여유로운 뒷좌석을 제공한다.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축간거리 2900mm인 기아 EV6는 여유로운 뒷좌석을 제공한다.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트렁크는 다소 아쉬웠다. 뒷좌석 시트 뒤에서 이어지는 공간은 제법 깊었지만, 해치백 구조 탓에 공간 활용도가 떨어져 높은 짐을 싣기는 어려워 보였다. 또한 운전석에서 룸미러를 통해 보는 후방 시야에도 구조 상의 제약이 있었다.

해치백이기에 더 느껴지는 E-GMP 매력

시동을 켜고 페달을 밟자 묵직하면서도 안정적인 주행감이 느껴졌다. 전고가 높지 않은 덕분에 전기차 배터리를 차량 하부에 배치한 E-GPM 플랫폼의 장점이 여실히 느껴진 부분이다. 저속에서는 사장님 차에서나 느낄 법한 승차감이 나오고 고속에서도 낮은 무게중심 효과로 고속 안정성이 높아졌다. 전기차인 만큼 순간적인 가속감은 어지간한 스포츠카를 웃돌았다.
기아 EV6의 헤드업 디스플레이 화면.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기아 EV6의 헤드업 디스플레이 화면.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한적한 고속도로에서 잠시 차량의 성능을 끌어냈더니 제한속도를 우습게 넘긴 속도에도 90km/h 정도로 달리는 안정감이 느껴졌다. 속도를 훨씬 더 올려도 불안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엔진의 진동과 소음이 없는 탓에 외부 소리에 약간 더 민감해지는 부분은 있었다. 사운드 제너레이터를 통해 인위적인 소리라도 크게 내줬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큰 문제는 아니다. 14개 스피커가 탑재된 메리디안 사운드 시스템을 통해 음악을 트니 거슬리던 소음은 모두 지워졌다.

헤드업 디스플레이는 이전 현대기아차에 비해 한층 진보했다. 증강현실 기술을 사용하며 숫자와 그래픽도 커져 시인성이 한층 개선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선행 차량 하단에 푸른 빛이 나는 선을 보여줘 반자율주행 기능이 앞 차를 인식하고 있다는 점도 직관적으로 알려줬다.
기아 EV6 트렁크 공간.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기아 EV6 트렁크 공간.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EV6는 전기차인 만큼 회생제동 기능도 지원한다. 스티어링 휠 뒷편 패들시프트를 통해 회생제동 강도를 실시간으로 조작할 수 있다. 가장 낮은 회생제동 단계에서는 내연기관차와 비슷하게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도 속도가 유지됐다. 한 단계 높이자 페달에서 발을 떼는 순간 차량의 감속이 확실히 느껴졌고, 가장 강하게 설정하니 정차까지 가능해져 가속페달만 밟아 운전하는 원페달 드라이빙이 깔끔하게 이뤄졌다.

많은 장점에도 소비자들이 전기차에 불편을 느끼는 부분은 주행거리와 충전이다. EV6 롱레인지는 1회 충전으로 최대 475km 주행이 가능하다. 다만 이는 전비가 5.4km/kWh일 경우의 수치로, 시내에서 중저속 위주의 주행을 하면 주행가능거리는 528km까지 늘어나게 된다.

겨울철 주행거리 감소 문제도 배터리에 히트펌프 시스템을 갖춰 감소율을 8% 남짓으로 낮췄다. 충전 역시 초고속 충전소 기준 10%에서 80%까지 배터리를 채우는데 걸리는 시간이 18분에 불과하다. 기아 EV6 가격은 스탠다드와 롱레인지 모델이 트림에 따라 4730만~5680만원이다. 고성능 GT 모델은 추후 출시될 예정이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영상=유채영 한경닷컴 기자 ycyc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