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나의 거듭된 백신 공급 지연으로 접종 일정이 갑작스레 미뤄지자 시민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구체적인 설명도 없이 2차 접종 일정을 일방적으로 미룬 방역당국의 대응도 도마에 올랐다.

다음달 해외 대학원에 입학 예정인 A씨는 이달 말 화이자 백신 2차를 맞을 예정이었지만 이날 갑자기 2차 접종일이 9월 둘째주로 미뤄졌다. A씨는 9월 첫주까지 현지에 도착해 입학 절차를 마쳐야 하는데, 접종 일정이 미뤄지면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교재 신청 등 모든 유학 일정이 틀어졌다. A씨는 “항공기 일정 변경에 따른 수수료까지 떠안은 데다 강의도 처음부터 듣지 못한 채 중간에 합류하게 됐다”며 “백신 수급에 문제가 없다는 대통령의 말만 철석같이 믿고 있었는데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라고 했다.

화이자 백신을 1차 접종한 B씨도 2차 접종일이 미뤄지면서 휴가 일정을 다시 짜게 생겼다. B씨는 “2차 접종일을 마친 뒤 휴가를 가는 것으로 계획을 짰는데, 접종 날짜가 겹치게 돼 숙박 예약 등 휴가 일정을 모두 취소해야 할 상황이 됐다”며 “백신 회사의 생산 차질을 이유로 정부가 국민과의 약속을 어기는 게 말이 되냐”고 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대규모 생산 경험이 없는 바이오벤처인 모더나의 공급 차질은 예견된 수순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모더나는 2010년 설립된 신생 기업이다. 글로벌 제약사인 화이자와 달리 대규모 생산시설을 운영해본 경험이 없다. 지금도 모더나는 코로나19 백신 원액은 미국과 스위스에서 생산하고, 원액을 병에 넣는 완제품(DP)은 미국 카탈란트, 스페인 로비, 스웨덴 레시팜 등에 맡기고 있다. 부스터샷 등으로 글로벌 수요가 급증하면서 모더나의 생산 역량이 이를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하지만 정부는 모더나의 생산 차질 원인도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앞서 방역당국은 지난달 모더나의 7월 공급분이 지연됐을 때 “스페인 제조 공정에서 차질이 빚어진 것으로 추정된다”며 “8월 물량은 스페인이 아닌 곳에서 제조하기 때문에 차질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날 정은영 보건복지부 백신도입사무국장은 “모더나 측으로부터 ‘생산 관련 실험실 문제’가 발생했다는 정도로만 들었다”고 했다.

정부가 애초에 모더나와 불리한 계약을 맺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모더나와 맺은 계약서의 핵심은 ‘연내 4000만 회분을 공급받겠다’는 것이다. 도입 물량은 분기별로만 정해져 있어, 월별·주별로 물량이 얼마나 들어올 것인지는 불투명하다. 모더나가 3분기 계약 물량의 대부분을 9월 말에 주더라도 한국 정부가 ‘계약 위반’을 주장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