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천지개벽에도 퇴계동 '9통 1·2반' 60년째 제자리 좁은 골목에 무너지고 갈라지고 '슬럼가' 전락…재정비 절실
박영서 기자·최령 인턴기자 = "어디 가서 물어볼 데나 있어요? 사람도 없는 빈집투성인데…역 주변에 이렇게 지저분한 곳이 있는 걸 누가 알겠어요.
" 강원 춘천시 남춘천역과 직선거리로 불과 200여m 떨어진, 열차가 오가는 모습이 한눈에 보이는 이른바 '초역세권'이라고 부를법한 곳에 사는 장정순(75)씨는 "삭막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내뱉었다.
"너무 삭막하다"는 장씨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그 말이 허언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서른 개 남짓한 주택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이곳에는 역세권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성한 집을 찾기 어려웠다.
손수레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골목길에는 각종 쓰레기가 뒤엉킨 집, 콘크리트 벽이 깨지거나 무너진 집들이 방치돼있었다.
재래식 화장실 분뇨가 처리되지 않은 탓에 심한 악취를 풍기는 집까지 있어 마스크를 쓰고도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고층 아파트와 건물들이 숲처럼 빼곡히 들어선 퇴계동에서도 이곳 '9통 1·2반'만은 1960년대에서 시간이 멈추어 서 있었다.
주민등록상 21세대 37명이 거주하는 곳이지만, 실제로 거주하는 사람들은 5세대 정도에 불과했다.
이곳에서 30년을 넘게 살았다는 장씨는 "전철이 들어올 때만 해도 개발이라도 될 줄 알았는데 이제는 다 떠나고 노인네들만 남았다"며 "몇 명 남지도 않았는데 뭐가 바뀌겠느냐"고 푸념했다.
도심 속 한가운데, 역세권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슬럼가'가 존재하는 이유를 찾고자 주민들부터 퇴계동행정복지센터, 춘천시, 공인중개업소를 돌아다녔으나 대답은 '돌고 돌았다'. 시와 행정복지센터는 빈집 정비 등 개발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차량 진입로를 내야 하는데, 땅 주인들이 원하지 않으면 강제로 개발할 수 없어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입장이다.
땅 주인들이 전국 각지로 흩어진 데다 개인정보가 포함된 서류를 함부로 열람할 수도 없고, 설사 확인하더라도 소유주가 불분명한 점도 어려움으로 꼽았다.
인근 한 공인중개업소는 "땅값 자체는 많이 올랐으나 매매 자체가 안 되고, 사람이 살 수도 없는 곳"이라며 "시에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개발이 점점 더 어렵게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개발이 되기를 원하면서도 "누가 나서겠느냐"며 자포자기한 상태다.
이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개발 논의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실제로 2015년 주민들 건의로 도시계획에 소방도로 2개 노선이 포함됐으나 예산 등을 이유로 미뤄졌다.
2년 뒤 일부 주민과 시의원 주도로 또다시 개발 논의가 이뤄졌으나 끝내 무산됐다.
그렇게 9통 1·2반은 잊혔고, 빈집은 화재 등 각종 안전사고 우려 속에 한때 비행 청소년들의 아지트로 전락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순자 시의원은 "춘천시민 누구도 위험하거나 불편하게 살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며 "도로를 정비하고, 오수관로를 제대로 개설하는 등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강원도에 따르면 도내 빈집은 2018년 3천186개 동에서 2020년 4천394개 동으로 늘었다.
조명호 강원연구원 연구위원은 "빈집 소유자 파악이 된다고 하더라도 행정적, 비용적 부담이 클 것"이라며 "행정적 보상 및 매입과 철거명령 사이에 실효성이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