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훼손한 양산읍성 기초부 첫 확인…길이 14.3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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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재재단 발굴…작은 돌 위에 50∼120㎝ 커다란 돌 올려
일제강점기에 신작로를 내는 과정에서 심하게 훼손된 양산읍성의 기초부가 발굴조사를 통해 처음 확인됐다.
한국문화재재단은 경남 양산시 중부동 268번지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해 길이 14.36m·너비 2.35∼2.7m·높이 0.64m 규모의 읍성 기초부를 발견했다고 19일 밝혔다.
양산읍성은 조선 성종 23년인 1492년에 쌓았고, 조선시대 후기까지 동·서·북문과 여러 건물이 남아 있었다.
일제가 1913년 제작한 양산 지적도에는 둘레가 약 1.5㎞인 읍성이 표시돼 있다.
하지만 대부분 허물어져 현재는 6∼7곳에 흔적이 부분적으로 존재한다고 알려졌다.
이번 조사 지점에서 북동쪽으로 약 120m 떨어진 중부동 181번지에 길이 15m, 높이 2m의 성벽이 있다.
한국문화재재단 관계자는 "양산읍성의 성벽은 일부 볼 수 있었지만, 읍성 아래 기초부 모습이 드러나기는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조사를 통해 확인한 성벽 기초부는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조성했다.
그중 조사 부지의 서쪽에서는 길이 10∼30㎝인 할석(割石, 깬돌)을 깔아 지반을 견고하게 만들고, 그 위에 길이 50∼120㎝인 커다란 돌을 두 줄로 올렸다.
이에 대해 한국문화재재단 관계자는 "성벽 기단에 놓는 지대석(地臺石)으로 추정된다"며 "지대석 부분은 길이 5.8m, 너비 1.2m 정도 된다"고 말했다.
이어 "부지 동쪽에서는 성벽 내벽 쪽에 채운 길이 50㎝ 정도의 할석이 2∼3단 정도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유물은 조선시대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길이 10㎝ 내외의 기와 조각이 출토됐다.
기와 중에는 '전'(田) 자를 새긴 유물도 있었다.
한국문화재재단 관계자는 "이번 조사를 통해 일제강점기 지적도의 양산읍성 자리에 기초부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며 "다만 문화재청이 제공하는 '문화유적분포지도'와는 읍성 위치가 조금 달랐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조사 결과가 양산읍성의 전체 위치를 찾고, 역사적 사실을 고증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한국문화재재단은 경남 양산시 중부동 268번지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해 길이 14.36m·너비 2.35∼2.7m·높이 0.64m 규모의 읍성 기초부를 발견했다고 19일 밝혔다.
양산읍성은 조선 성종 23년인 1492년에 쌓았고, 조선시대 후기까지 동·서·북문과 여러 건물이 남아 있었다.
일제가 1913년 제작한 양산 지적도에는 둘레가 약 1.5㎞인 읍성이 표시돼 있다.
하지만 대부분 허물어져 현재는 6∼7곳에 흔적이 부분적으로 존재한다고 알려졌다.
이번 조사 지점에서 북동쪽으로 약 120m 떨어진 중부동 181번지에 길이 15m, 높이 2m의 성벽이 있다.
한국문화재재단 관계자는 "양산읍성의 성벽은 일부 볼 수 있었지만, 읍성 아래 기초부 모습이 드러나기는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조사를 통해 확인한 성벽 기초부는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조성했다.
그중 조사 부지의 서쪽에서는 길이 10∼30㎝인 할석(割石, 깬돌)을 깔아 지반을 견고하게 만들고, 그 위에 길이 50∼120㎝인 커다란 돌을 두 줄로 올렸다.

이어 "부지 동쪽에서는 성벽 내벽 쪽에 채운 길이 50㎝ 정도의 할석이 2∼3단 정도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유물은 조선시대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길이 10㎝ 내외의 기와 조각이 출토됐다.
기와 중에는 '전'(田) 자를 새긴 유물도 있었다.

이 관계자는 "조사 결과가 양산읍성의 전체 위치를 찾고, 역사적 사실을 고증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