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신 인골 발견에 주목받는 경주 탑동 유적…"고인골 보호장치 필요"
190㎝ 조선미라 '남오성'과 경주서 나온 180㎝ 신라 남성
신라시대 무덤이 밀집한 경북 경주 탑동 유적에서 신장이 180㎝에 가까운 남성 인골이 나왔다는 사실이 15일 문화재계에 알려지면서 소환된 인물이 있다.

약 20년 전 미라로 발견된 조선시대 무장 남오성이다.

1643년에 태어나 1712년 사망한 남오성과 약 1천500년 전에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신라 남성의 공통점은 기골이 장대하다는 사실이다.

탑동 유적 남성은 지금까지 확인된 신라시대 인골 가운데 최장신이고, 남오성은 키가 무려 약 190㎝였다.

남오성 시신은 2002년 충남 태안 의령남씨 공동 묘역에서 이장(移葬) 작업을 하다 발견됐다.

출토 당시 눈동자·치아·수염·손톱·발톱은 물론 피부도 일부 확인됐으나, 보존되지 않고 후손들에 의해 화장됐다.

조선시대 남성 평균 키가 161㎝ 정도라고 알려진 점을 고려하면 남오성은 그야말로 거인이었다.

조선 개국 일등공신인 남재의 9세손인 그는 1676년 무과에 급제해 남도 수군을 통솔하는 삼도통제사에 올랐다.

안타깝게도 남오성의 시신은 사라졌으나, 무덤에서 발견된 복식 약 50건은 국립민속박물관이 보존처리를 해 조선시대 생활사를 짐작할 수 있는 유물로 남았다.

경주 탑동 유적에서 출현한 신라 남성은 남오성과 같은 무인이었을 수도 있으나, 발굴조사를 통해 수습한 유물 가운데 무기류는 없었다.

조사단은 농기구인 괭이의 날로 추정되는 쇠붙이가 머리 쪽에서 나왔고, 넙다리뼈 상부에서 개 뼈로 보이는 뼈가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허리 부근에서는 사슴뿔로 짐작되는 손잡이가 달린 약 20㎝ 길이의 작은 칼도 발견됐지만, 크기가 워낙 작아 무기가 아닌 생활 도구로 분석됐다.

연구자들은 이 남성의 척추가 비정상적으로 변형됐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육체노동을 많이 해 '디스크'에 걸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신라 남성의 직업이 무엇인지, 몸을 써서 어떤 일을 했는지는 정밀한 고고학 조사와 병리학 연구를 해야 파악될 것으로 보인다.

190㎝ 조선미라 '남오성'과 경주서 나온 180㎝ 신라 남성
◇ 경주 탑동은 희귀한 삼국시대 인골의 메카일까
고고학 발굴조사에서 유물이 아닌 인골이 관심을 받은 시기는 아주 오래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토양이 산성이어서 인골이 보존되기 어렵다고 알려졌다.

그나마 조선시대 미라는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데, 그 이유는 회곽묘 혹은 회격묘라는 독특한 무덤 양식 때문이다.

이 무덤은 땅을 판 뒤 석회층을 만들고, 그 안에 관이나 곽을 안치한다.

조선왕조실록에 "석회는 모래를 얻으면 단단해지고, 흙을 얻으면 들러붙는다.

여러 해가 되면 굳어져 전석(塼石·벽돌)이 되어 땅강아지, 개미, 도적이 모두 가까이하지 못한다"는 문장이 있을 정도로 회곽묘는 시신과 유물을 보존하는 데 위력을 발휘했다.

남오성뿐만 아니라 최근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 복식 124점과 함께 발견된 조선시대 여성 미라 2구도 회곽묘에 매장됐다.

하지만 고려시대 이전에 조성한 무덤에서는 인골이 발견되는 사례가 많지 않다.

인골이 나오더라도 대부분은 보존 상태가 좋지 않거나 두개골이나 넙다리뼈 같은 일부만 확인된다.

이러한 점에서 희귀한 삼국시대 인골이 쏟아져 나온 탑동 유적은 이른바 '고인골의 메카'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문화재재단이 진행한 이번 조사에서만 인골 12기가 나왔는데, 신장이 약 180㎝인 인골은 보존 상태도 거의 완벽해 시선을 끌었다.

탑동에서는 이전에도 지름 7.3m인 무덤에서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두개골, 치아, 넙다리뼈가 수습된 바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관계자는 "인골은 부패하기 직전 상태에서 드러나는 경우가 많지만, 신라의 장신 인골은 단단했다"며 "여러 학문의 연구자와 함께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탑동 유적에서 신라시대 인골이 많이 확인되는 이유로 지하가 습지나 늪과 같다는 점을 꼽았다.

땅이 진흙처럼 변해 시신과 유물이 보호됐다는 것이다.

190㎝ 조선미라 '남오성'과 경주서 나온 180㎝ 신라 남성
◇ 고인골은 문화재가 아니다?…법적 보호장치 없어
고분에서 나오는 인골은 옛사람의 형질·생활환경·장례 풍습을 유추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이지만, 법적 보호장치는 여전히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다.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이 지정하는 문화재는 토지나 물속에 있는 유형문화재와 지표나 수중에 있는 천연동굴·화석이며, 인골은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인골이 발견돼도 맡길 곳이 없어서 화장하거나 다시 매장할 때가 많다.

고인골을 법적으로 보호하려는 움직임은 수년 전부터 있었으나, 여러 이유로 결실을 보지 못했다.

최근에는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의원이 연고가 없는 인골과 미라를 연구하고 보관할 수 있도록 한 매장문화재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고인골은 유물과 마찬가지로 생활사를 연구하는 데 필요한 자료"라며 "인골을 문화재로 인정하는 법률이 만들어져야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하고, 병리학 연구를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