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면 장마가 끝난 것 같은데 기상청 시각은 다르다. 이번 주 몇 차례의 국지성 소나기에 이어 18~19일 전국에 비가 한 번 더 온 뒤에야 장마가 끝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3일 이후 비가 계속 내려야 장마라고 여기는 일반 인식과는 큰 차이가 있다.
이는 우리가 체감하는 ‘기상 현상’과 ‘기상 용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기상청이 장마를 판단하는 기준은 비가 아니라 정체전선(장마전선)이다. 따뜻한 공기를 품은 북태평양 고기압과 찬 공기를 머금은 오호츠크해 고기압이 만나 정체전선을 형성하는 때를 장마로 본다.
지금의 정체전선은 우리나라의 동과 서로 갈라져 있다. 그래서 초기에만 비가 내리고 그 뒤로 소강상태라고 한다. 지난해에는 장마가 최장 기간인 54일 동안이었던 데 비해 올해 장마는 짧다. 그 대신 밤(오후 6시~오전 9시) 최저기온이 25도를 넘는 열대야가 작년보다 23일 일찍 찾아왔다. 벌써 사흘째다.
이래저래 기상청에 불만을 터뜨리는 사람이 많다. 정체전선이건 고기압이건 비도 오지 않는데 전문용어로 ‘장마’라니 속이 터진다는 것이다. 기상청도 고민이 많다. 2009년부터는 공식적으로 장마를 예보하지 않고 분석만 한다. 복잡한 기압골 변화를 완벽하게 예측하는 일은 간단치 않다.
무조건 기상청이나 날씨를 탓할 수만도 없다. 거대한 자연 앞에 인간은 미약한 존재다. 예측불가의 날씨는 생각하기 나름이다. 천상병 시인처럼 “7월 장마 비오는 세상/다 함께 기죽은 표정들/아예 새도 날지 않는다”고 자탄하기도 하지만, “올해는 비가 적어 병충해가 줄고 과일도 맛있겠네”라며 좋게 받아들이는 긍정론자도 있다.
장마를 한자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은 우리말이다. 16세기 문헌에 나오는 ‘댱마’의 ‘댱’은 길다는 뜻이고, ‘마’는 물의 옛말로 비를 의미한다. 우리 속담에 좋은 환경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걸 ‘긴 장마 뒤 외 자라듯’이라고 했다. 그러나 ‘긴 장마’라는 표현도 이젠 낡은 말이 돼 버렸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