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철거 건물 붕괴 참사 과정에서 현장 점검을 제대로 하지 않는 등 감리자의 해태가 불법 철거의 한 요인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그러나 감리자가 비교적 제역할을 한 현장에서도 위험한 불법 철거를 막지 못하고 있는 실태가 드러나 제도보완이 요구된다.
광주북부경찰서는 광주 북구 운암 3단지 불법 철거 공사 관련 사건에 대한 수사를 본격적으로 시작, 고발인과 피고발인들을 순차적으로 소환 조사하고 있다고 24일 밝혔다.
운암3단지 재건축 해체공사 과정에서 불법 철거 행위를 적발한 광주 북구청은 HDC현대산업개발, GS건설, 한화건설 등 공동 시공사와 철거업체를 경찰에 고발했다.
이 현장에서는 철거 중인 건물이 붕괴해 17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 학동 4구역 붕괴 참사 현장에서와 같은 '밑동 파기식' 건물 철거가 자행됐다.
학동 4구역의 경우는 감리자가 현장을 제대로 점검하지 않는 등 제역할을 하지 못해 구속까지 됐으나, 운암 3단지의 감리 회사 측은 "우리는 제역할을 했음에도 불법 철거가 자행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63개 동 아파트 2천여 세대를 철거하는 현장의 감리를 맡은 A 회사는 상주 감리를 현장에 배치했다.
지난 5월 초부터 철거 현장의 '분진' 민원이 끊이지 않았고, 규모 큰 철거 현장인 탓에 A 회사 측은 상주 감리를 배치할 의무가 없음에도 감리자를 현장에 상주시켰다고 밝혔다.
지난달 13일 A 회사의 상주 감리는 갑작스럽게 "해체계획서에 따라 상부에서 하부로 철거를 진행하라"고 현장 철거업체 측에 지시한다.
A 회사 측은 "현장에서 해체계획서를 위반한 철거 정황이 의심돼 이 같은 지시를 내렸다"며 "이 내용은 시공사 중 철거 현장을 관리하는 현대산업개발의 현장 관계자에게도 통보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비가 내리는 15일 철거업체는 감리가 주말을 맞아 자리를 비운 틈을 타 3개 동을 '밑동 파기식'으로 하층부터 부숴 한꺼번에 무너트리는 철거를 진행했다.
이 장면은 '분진' 피해에 시달리는 이웃 아파트 단지 주민이 찍은 동영상에 고스란히 담겼고, 언론 보도를 통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됐다.
A 회사 측은 감리자가 현장에 없는 틈에 불법 철거가 진행된 사실을 뒤늦게 알아채고, 현장 회의 등을 거친 후 며칠 뒤 이 사실을 관할 행정청인 광주 북구청에 통보했다.
이후 지난 9일에는 광주 동구 학동에서 '밑동 파기식' 철거를 하다 5층 건물이 도로로 붕괴하는 사고가 발생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똑같은 철거 행위가 이뤄진 운암 3단지도 언론의 관심을 받게 됐다.
A 회사 관계자는 "상주 감리자가 해체계획서를 위반한 철거 행위를 우려해 규정을 준수하라는 지시를 철거업체에 내리고 시공사에도 이를 통보했음에도 몰래 불법 철거가 자행됐다"며 "이 사실을 경찰 조사에서도 그대로 진술했다"고 밝혔다.
현대산업개발 측은 "감리자가 시공사에 통보한 내용은 '민원에 대비해 철거계획서대로 제대로 작업하라고 지시했다'는 내용만 통보받았고, 같은 지시를 시공사도 철거업체에 내렸다"며 "그런데도 비가 내리는 15일 전도 방식의 철거를 한 것을 현장에서 발견하고, 그날 오전에 바로 공사를 중지시키는 조치를 했다"고 해명했다.
결국 감리자가 비교적 제역할을 한 철거 현장에서도 위험한 불법 철거 행위가 속수무책 진행됨 셈인데, 시공사의 책임을 강화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조오섭(광주 북구갑) 의원은 "철거 현장에서 반복되는 불법행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불법하도급을 막고, 원청인 시공사의 책임을 강화해 현장의 관리·감독이 제대로 진행되게 해야 한다"며 "민간공사에서도 건설산업기본법상 적정성 심사를 의무화하고, 도시정비법에 시공사가 각종 재해 발생 시 책임을 지도록 하는 조항을 추가하는 법 개정안을 준비 중이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