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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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덕평 물류센터 화재를 둘러싼 논쟁은 매우 기형적이다. 소방 당국과 경찰의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는데도 누구의 책임인 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치열하다. ‘과학’은 온데간데 없고, ‘온라인 여론’의 정서법이 횡행한다.

‘결과론적 책임’의 논리가 교묘하게 퍼트려지고, 대중에 여과없이 흡수되고 있다는 점도 이번 논쟁의 특기할만한 점이다. 이번 쿠팡 물류센터 화재는 119 신고가 이뤄진 뒤 단 5분만에 248명 근무자 전원이 부상자 한 명 없이 무사히 대피했다. 지난 5년간 경기도 물류 창고에서 발생한 827건의 화재에서 사망자와 부상자 수가 각각 46명, 56명에 달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하지만 이유야 어찌됐건, 결과적으로 소방관 1명이 근무 중 사망했다는 점을 들어 기업에 대한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전문가들은 반(反)기업정서에 기댄 ‘마녀 사냥’이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고 우려한다. 안전 및 재난심리 전문가인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는 22일 “재난에 대한 평가 및 정확한 사후 조치를 위해서는 예방에서부터 사고 대응까지 종합적인 면을 고려해야 한다”며 “결과만 놓고 기업에 책임을 씌우면 누가 예방 활동에 총력을 기울이겠나”고 반문했다. 이하 정 교수와의 일문일답.

-인터뷰에 응하시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시스템 개선과 예방이 중요한데 이에 관한 얘기는 온데간데 없어서 답답했습니다. 사고 후 뒷북 행정과 처벌에만 집중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과론적 책임 논리는 재난 안전과 관련해 매우 위험합니다”

-‘결과론적 책임’이라는 건 무엇을 의미하나요?
“과거 다른 대형 화재와 달리 쿠팡 덕평 물류센터 화재에선 다친 근로자가 없습니다. 순직한 소방관에 대해선 누구나 안타까운 마음이 들 겁니다. 어떻게 사망으로까지 이어졌는 지는 별도 조사가 필요하겠습니다만, (이를 포함해 진화 과정 전체에 대해) 쿠팡이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화재 원인과 소방관 사망을 별개로 봐야한다는 얘기입니다. 사고 조사는 이성적이고 차분해야하는데 현재 정치인과 언론, 노조 등이 결과만 놓고 감정적으로 사고 조사에 개입하고 있어요”

-안전 전문가로서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무엇인지요.
“결과만 갖고 사건을 재단하면 기업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운이 좋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겁니다. 아무리 예방을 하더라도 통제할 수 없는 일로 사회적으로 안 좋게 비춰지고, 업체의 책임으로 돌려버리면 차라리 안전기원제를 하는 게 더 현명하다고 할 수 있겠죠. 한마디로 기업의 작업장 안전을 위한 예방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입니다”
-화재 예방을 위한 쿠팡의 대처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경남 밀양 요양병원, 경기 이천 물류센터와 비교하면 예방과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후한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점수를 준다고 하면 80점 이상이에요. 근로자 중에서 사망 뿐만 아니라 질식도 전혀 없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화재 사고에서 가장 무서운 건 화상보다는 연기에 의한 질식사에요. 스프링클러 오작동 의혹이 있긴 하지만, 그건 조사가 나와봐야알 수 있는 일이에요. 설혹 오작동이 났다고 해도 그 이후에 200명이 넘는 직원들이 안전하게 대피했다는 점이 주목할만합니다”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었던 요인 분석을 하신다면.
“이 부분이 참 ‘아이러니’에요. 쿠팡 덕평 물류센터의 건축자재는 내연성 자재인 글라스울입니다. 지난해 38명의 사망자를 낸 한익스프레스 물류센터의 경우 가연성 소재인 우레탄폼으로 지어져서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용접작업에 취약했어요. 내연성 자재다보니 초기에 불이 쉽게 번지지 않았고, 연기도 나지 않아서 즉각 대피가 이뤄지지 않은 측면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내연성 소재 덕분에 아무런 사고도 없던 거에요”

이와 관련, 강한승 쿠팡 대표는 쿠팡의 안전 관리 노력에 대해 “덕평물류센터는 지난 2월부터 4개월 동안 전문 소방업체에 의뢰해 상반기 정밀점검을 완료했다”며 “소방 안전을 위해 필요한 추가적인 개선 사항을 모두 이행한 상태였다”고 말한 바 있다. 쿠팡은 지난달 말 안전관리를 담당하는 임원을 등기임원으로 선임하기도 했다. 쿠팡측 설명에 따르면 지난 1년 간 안전전문 인력약 700여명을 추가로 고용했으며, 안전 관리를 위해 2500억원 이상을 투자했다.

-스프링클러가 8분 간 꺼져 있었다는 지적이 있는데요
“만일 누군가에 의해 꺼져 있었다면 문제가 될 거라고 봅니다. 하지만 아직은 한 명의 증언에 의한 의심일 뿐이고, 정확한 결과를 기다려봐야 합니다. 다만, 한 가지 지적할 것은 오작동이건 누군가에 의해 일부러 꺼졌건 간에 이것과 화재 확산 간에 인과관계를 단정하는 것은 매우 무리하다는 점입니다. 스크링클러에 관한 얘기가 만일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약간의 시간 지체가 있었을 뿐, 8분 정도의 시간 차가 화재를 더 크게 했다든지, 인명 피해의 원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얘기에요”

-화재 경보기 등 예방을 위한 장치의 오작동 문제는 어떻게 봐야하나요?
“제 전공이 안전재난심리 분야에요. 재난 현장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본성과 심리를 연구합니다. 이렇게 생각해보시죠. 지금 당장 당신이 있는 건물에서 화재 경보기가 울렸다고 가정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대피할까요? 아마 100명 중 한,두명 뿐일 겁니다. 아파트 단지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합니다. 베테랑 경비원일수록 경보기 작동에 반응을 잘 안해요. 이를 ‘정상화 편견’이라고 부릅니다. 덕평 물류센터의 쿠팡 안전 요원들도 어쩌면 이런 상황에 처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안전불감증이었다고 일방적으로 매도할 일은 아니라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소방 현장에서 다양한 판단 착오가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 화재에만 작동하도록 경보기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건 기술적인 분야라서 제가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만, 현재 경보기는 실제 화재가 아니더라도 최대한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만들어져 있어서 예방 효과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