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에서 채굴한 경영 스티커 메시지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한국광고학회 제24대 회장)
국민의힘 대표로 선출된 이준석 씨는 경선 과정에서 5선의 주호영 의원에게 이렇게 대꾸했다.
주 의원이 “동네 뒷산만 다니면 에베레스트를 오를 수 없다”고 하며 소장파의 경험 부족을 지적하자 이처럼 간명하게 반문해버린 것.
주 의원은 그 순간 팔공산이라는 지역 프레임에 갇혀 버렸다. 사실상 경선은 그때 끝나버린 것이나 진배없었다.
기업의 마케팅 활동에서서도 마찬가지다. 팔공산 같은 뜻밖의 말이 브랜드 이미지를 결정해버린다.
사라리(Sara Lee)사의 원더브라(Wonderbra) 광고 ‘뉴턴’ 편(1994)에서는 모두가 뉴턴이 옳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뉴턴은 틀렸다고 주장했다.
과학계의 에베레스트 같은 존재인 아이작 뉴턴을 팔공산으로 축소시켜버렸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주목할 수밖에 없다.
광고를 보면 체코 출신의 모델 에바 헤르지고바가 검정색 브라를 하고 당당하게 정면을 응시하는 장면이 한 눈에 들어온다.
사진 아래쪽에 이렇게 헤드라인을 썼다. “뉴턴은 틀렸다(Newton Was Wrong).” 뉴턴이 틀렸다니? 아침에 경제 신문을 읽던 영국인들은 광고를 보고나서 무릎을 쳤다.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순간에 뉴턴이 만유인력(萬有引力)의 법칙을 발견했다는 건 초등학생도 아는 사실이다.
질량을 가진 물체끼리는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는 것. 지구의 중력 때문에 모든 사물은 아래로 떨어지는 성질이 있는데, 원더브라는 가슴을 받쳐 올려주니까 뉴턴이 틀렸다는 뜻이다.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을 역으로 이용해 브래지어의 ‘푸시업(push-up)’ 기능을 강조했다. 가슴을 모아주고 올려준다며 천편일률적으로 주장하는 우리나라의 브라 광고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 광고가 야한가? 원더브라 광고에 풍만한 가슴이 등장했지만 선정적인 느낌은 들지 않는다.
성적 소구(sex appeal) 기법은 광고학과 학생들이라면 반드시 배워야 할 중요한 지식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맹목적으로 선정적인 광고를 만들면 곤란하다.
야한 표현이 충분히 허용될 수도 있는 브라 광고에서 선정성(煽情性)을 자제함으로써 오히려 주목을 끌었으니, 원더브라 광고는 성적 소구 광고의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기존의 브라 광고와는 달리 가슴을 모아주고 올려준다고 묘사하지 않고, “뉴턴은 틀렸다”고 말하는 의외성이 메시지를 착 달라붙게 하는 스티커 메시지로 작용했다.
이 광고에서 채굴한 경영의 스티커 메시지는 의외성(Unexpectedness)이다. 칩 히스와 댄 히스는 『스틱』(2009)에서 어떤 메시지가 1초 만에 사람의 뇌리에 착 달라붙는 스티커 메시지가 되도록 하는데 필요한 6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그 중 하나가 의외성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익숙한 주제를 다르게 해석해서 뜻밖의 단어를 제시했다. 모두들 뉴턴이 옳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뉴턴은 틀렸다고 했다.
광고 창작자들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역으로 해석해 가슴을 받쳐주고 올려주는 브라의 기능에 접목한 결과, 의외성의 스티커 메시지가 탄생한 것이다.
만약 이준석 대표가 주호영 의원을 향해 대구에서만 다섯 번 출마한 분이라고 반박했더라면 파괴력이 그토록 크지는 않았으리라.
그는 대구 대신에 팔공산을 소환해 에베레스트와 대척점에 세우면서 사람들에게 기억의 단서를 제공했다. 팔공산이라는 단어를 소환한 것만으로도 그는 정치판에 우뚝 서기에 충분했다.
등산을 즐기는 분들에게 팔공산은 그렇게 만만한 산이 아니다. 하지만 이준석 대표의 발언 때문에 앞으로 팔공산은 만만한 산으로 기억될 가능성이 높다.
뜻밖의 한 마디는 생각보다 무서운 법이다. 마케팅 경영자들도 글을 쓰거나 말할 기회가 많을 텐데, 말이나 글에 의외성을 고려한 메시지를 제시한다면 쉽게 잊히지 않는 스티커 메시지로 기억될 터.
그래야 말과 글이 힘을 얻고 공감대를 확산할 수 있다. 뉴턴만 틀린 게 아니다. 한 마디도 건질 게 없어 뭘 이야기하는지 알 수 없는 당신의 글이나 말도 틀렸다.마케터를 위한 지식·정보 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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