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총재의 금리 인상 시사는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 등 금융 긴축을 준비하는 주요국 통화정책 흐름과 연결시켜 보면 자연스러운 방향이다. 정작 주목해야 할 대목은 금리보다 한은이 말하고 싶은 ‘진짜 메시지’일 수 있다. 그는 “(세계) 각국은 4차 산업혁명 등 관련 산업 선점을 위해 각축을 벌인다”며 “한국 경제가 경쟁력 우위를 확보할 수 있도록 산업구조와 규제체계의 개편을 서둘러야 한다”고 역설했다. ‘포스트 코로나’의 경쟁력을 좌우할 산업구조 개혁과 규제 개편·개선의 시급성을 중앙은행 차원에서 또 한 번 강조한 셈이다.
한은이 이런 주문을 했다는 것 자체가 글로벌 경쟁이 갈수록 심해진다는 방증이다. 각국이 코로나 대책이라며 차별성도 없이 돈 풀기 경쟁을 벌여왔지만, 위기 국면이라는 이유로 산업구조 개편과 경제구조 개혁, 규제 혁파 같은 중요한 과제는 등한시해온 측면이 있다. 한국은 특히 더 심했다. 급등한 인플레이션 우려에 긴축을 준비하지만 경제를 정상화시키려면 금리만으로 문제를 풀기 어렵다는 사실을 한은이 역설한 것이다.
정부도 이에 부응해야 한다. 한은 요구가 아니더라도 외면한 구조 개혁 대상은 너무나 많다. 친노동에 경도된 노사정책, ‘퍼주기’ 경쟁으로 악화된 재정, 반도체 대란 와중에 제기된 산업 지원 및 기업 규제 등이 모두 그렇다. 당장 30조원에 이르는 2차 추경 편성 문제점부터 다음달에 전면 시행되는 주 52시간 근로제의 파장까지 원점에서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재계의 중대재해처벌법 보완 요구도 계속 미룰 수 없다.
모두 정부·여당엔 내키지 않지만 ‘해야 할 일’이다. 이런 과제는 뒤로 미룬 채 한은 업무에 간섭하고 개입해선 안 된다. 더불어민주당 인사들이 지난 4·7 재·보궐선거 패배의 원인을 은행에 돌리며 금리 인하를 압박한 것이나 코로나 극복에 한은 역할이 부족하다고 목소리 높였던 것 같은 일이 반복돼선 곤란하다. 한은도 정치권의 부당한 압력에 휘둘려선 안 된다. 한은은 입바른 소리나 한두 번 하면 끝나는 ‘연구소’가 아니라 금리정책으로 경제를 살리는 것이 주 임무인 ‘독립적 국가기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