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백신 접종 확대로 경제가 회복 조짐을 보이자 전 세계가 이제는 인플레이션 공포에 떨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과정에서 풀린 어마어마한 돈을 생각할 때, 당연한 두려움이다.

경제가 무너지자 각국은 소득 보전과 경기 부양을 위해 엄청난 돈을 풀었다. 실질경제성장으로 흡수되지 않은 과잉 유동성은 결국 인플레이션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바로 이 때문에 미국의 경우 당장 돈 풀기를 멈추거나 금리를 인상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중앙은행(Fed)과 재무부가 거듭 밝혀도 시장은 이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그래서 테이퍼링 비슷한 이야기만 나와도 시장은 발작을 일으킨다. 10년물, 20년물 국채 금리가 뛰어오르고 주식시장은 단기 급락을 겪는다. 미국 시장의 영향을 크게 받는 한국의 금융시장도 요동친다. 새벽에 일어나면 밤새 미국 시장이 어땠는지부터 살피는 게 한국 투자자들의 일상이 된 이유다.

시간의 문제일 뿐, 인플레이션은 오게 돼 있다. 교과서적인 대처 방법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다. 긴축적인 통화정책과 긴축적인 재정정책이다. Fed와 재무부가 뭐라고 하든 조만간 미국은 이 방향으로 갈 것이다. 이따금씩 금리와 테이퍼링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앞으로 있을 긴축정책에 대한 예방접종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이라고 해서 미국과 크게 다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선택의 범위가 좁다. 금리인상과 같은 통화정책은 사용하는 데 많은 제약이 따른다. 엄청난 가계 대출이 부담이다. 급격한 금리인상은 대출의 부실화와 이에 따른 금융회사의 재무 악화를 낳을 공산이 크다.

가계대출은 이전에도 우려스러운 수준이었는데, 정부의 주택정책 실패로 인한 패닉 바잉과 절망한 젊은이들의 ‘빚투’(빚내서 투자하기)로 더욱 증가했다. 아파트값 고공행진에 전세난까지 겹치자 30대 젊은 무주택자들이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해 아파트 구매 대열에 뛰어들었다. 다른 한편 ‘이생집망’(이번 생에 집 사기는 망했다)이라며 절망한 젊은이들은 빚을 내 코인과 같은 위험 자산에 투자했다. 그 결과 이 세대의 부채가 빠르게 증가했다. 국회예산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가구주 부채 증가율이 가장 높았던 연령대가 30대였다.

부동산 ‘영끌 대출’에다 ‘빚투 열풍’까지 겹치면서 지난해 가계가 진 빚은 사상 처음으로 1700조원을 넘어섰다. 금융회사의 대출 금리는 이미 오르고 있다. 기준금리가 인상되면 가계의 상환 부담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늘어날 것이다. 가장 큰 부담은 ‘영끌’ ‘빚투’한 젊은 층이 지게 될 것이다. 부실 채권이 급증하고 신용불량자가 양산될 것이며 그 영향은 금융회사에도 미칠 것이다. 긴축적 통화정책이 어려운 현실적 이유다.

남는 것은 긴축적 재정정책이다. 코로나19 이전부터도 문재인 정부는 정부 주도의 일자리 정책 등으로 엄청난 확장재정을 펼쳐왔다. 코로나19까지 겹치자 정부는 적자재정으로 지출을 더욱 확대했다. 그 결과 국제신용평가기관들은 적자재정이 계속될 경우 한국의 신용등급을 하향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에 이르렀다. 훼손된 재정건전성을 복원하기 위해서라도 긴축적 재정정책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확장재정을 고집하는 모습이다. 지난 27일 ‘2021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적어도 내년까지는 경기의 확실한 반등과 코로나 격차 해소를 위해 확장재정 기조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의 재정지출이 마중물이 돼 경제가 성장하면 결국 세금도 늘어나기 때문에 확장재정이 재정건전성 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은 근거가 박약하다. 정부가 재정을 투입하면 국가 총수요가 증가하고 국내총생산(GDP)도 늘어나는 것은 맞지만, 늘어나는 GDP 증가분이 투입된 재정지출보다 적다는 것은 이미 많은 연구에서 확인된 바다. 당연히 세수 증가는 투입된 재정에 크게 못 미친다. 결국 확장재정은 유동성 공급을 늘려 인플레이션만 가속화할 우려가 있다. 지금은 확장재정을 이야기할 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