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년만에 재심서 간첩 누명 벗었지만…이미 고인
군사정권 시절 조업 중 북한 경비정에 피랍됐다가 풀려난 뒤 간첩으로 몰려 사형선고를 받았던 어민이 49년 만에 재심에서 누명을 벗었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10부(이재희 이용호 최다은 부장판사)는 간첩, 국가보안법·반공법 위반 혐의로 1972년 기소됐던 고(故) 김모씨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김씨는 1968년 5월 서해에서 조업 중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북됐다가 북 지도원으로부터 31만원을 받고 같은 해 12월 남한으로 돌아왔다.

이후 김씨는 경찰에 체포돼 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한 끝에 북한에서 노동당에 입당해 충성을 맹세했고 공작원으로 투입됐다는 취지의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김씨는 1972년 10월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항소심에서 징역 15년과 자격정지 15년으로 감형돼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출소한 김씨는 2015년 7월 수사 과정에서 불법 구금과 가혹 행위를 당했다며 항소심 법원인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서울고법은 불법 구금을 사실로 인정하기 어렵다며 재심 청구를 기각했으나, 대법원은 2019년 4월 재심 사유가 있다며 기각 결정을 파기했다.

이에 따라 서울고법은 2019년 9월 재심을 개시했다.

재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경찰에 불법 체포·감금돼 심리적 압박이나 정신적으로 강압된 상태에서 임의성 없는 자백을 한 뒤 검찰에서도 자백한 것"이라며 "임의성을 의심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의 압수물이나 압수조서는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정한 영장주의 원칙을 위배해 수집하거나 획득한 증거"라며 "이를 유죄 증거로 사용해야 할 필요성을 검사가 적극적으로 증명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지 49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결과를 지켜보지는 못했다.

그는 재심 결정 2개월 뒤인 2019년 11월 7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