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침] 국제([에따블라디] 고려인은 떠났지만 맷돌·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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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의 대표적 정착지 '푸칠로프카'…학교에 전시관 조성해
학교 관계자 "마을에서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간직해야"
[※ 편집자 주 : '에따블라디'(Это Влади/Это Владивосток)는 러시아어로 '이것이 블라디(블라디보스토크)'라는 뜻으로, 블라디보스토크 특파원이 러시아 극동의 자연과 역사, 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생생한 소식을 전하는 연재코너 이름입니다.
]
지난 19일 차를 타고 러시아 연해주(州) 블라디보스토크 도심을 벗어나 북쪽으로 2시간 30분가량을 내달려 도착한 조그마한 시골 마을. 인구가 500명을 조금 웃도는 우수리스크 지역의 푸칠로프카(육성촌·六城村)다.
![[고침] 국제([에따블라디] 고려인은 떠났지만 맷돌·묘비…)](https://img.hankyung.com/photo/202105/AKR20210523012500096_22_i_P4.jpg)
이 마을은 러시아 고려인(옛 소련권 토착 한인) 이민 역사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대표적인 한인 정착지다.
1869년 마을이 조성됐다.
당시 니콜리스크(현재 우수리스크)에서 가장 부유하면서도 러시아화 된 지역이었다.
1937년 고려인 강제 이주가 이뤄지면서 마을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한순간에 잃었다.
고려인들은 떠났지만, 그들의 흔적은 여전히 마을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남아있었다.
마을 중심부 학교(쉬콜라) 건물 뒷마당만 가봐도 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마당에는 고려인들이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맷돌들이 곳곳에 널려있었다.
![[고침] 국제([에따블라디] 고려인은 떠났지만 맷돌·묘비…)](https://img.hankyung.com/photo/202105/AKR20210523012500096_09_i_P4.jpg)
2007년에 현지인들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20㎡ 규모의 전시관에는 고려인과 관련한 각종 사진과 서적 등 200개 정도의 전시물이 보관돼있다.
특히 1874년 발간된 최초의 우리말 대역사전인 '노한사전'을 펴낸 러시아 군인 미하일 파블로비치 푸칠로(1845~1889)에 대한 자료가 눈길을 끌었다.
![[고침] 국제([에따블라디] 고려인은 떠났지만 맷돌·묘비…)](https://img.hankyung.com/photo/202105/AKR20210523012500096_10_i_P4.jpg)
지방관리로 파견된 젊은 군인 푸칠로는 궁핍 등을 피해 이주한 한인들의 연해주 정착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이를 위해선 원활한 의사소통이 필수적이었다.
결국, 그는 한인들의 말을 체계적으로 조사, 745쪽에 달하는 노한사전을 만들었다.
![[고침] 국제([에따블라디] 고려인은 떠났지만 맷돌·묘비…)](https://img.hankyung.com/photo/202105/AKR20210523012500096_11_i_P4.jpg)
그는 일제 수탈의 실상과 한인의 저항을 묘사한 소설 '낙동강' 등을 집필해 한국에 고려인 문학의 아버지로 평가받고 있다.
조명희는 1928년 망명 후 이 마을에 세워진 육성촌 농민청년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고침] 국제([에따블라디] 고려인은 떠났지만 맷돌·묘비…)](https://img.hankyung.com/photo/202105/AKR20210523012500096_20_i_P4.jpg)
농민청년학교 건물은 전시관이 있는 학교 맞은편에 보존돼있다.
푸칠로프카의 학교 전시관을 관리하는 파브페르타바 발렌티나(62)는 "과거에 한국인이 이 건물을 구매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설명했다.
건물 주변에는 현재 출입을 막는 담장이 쳐져 있어 내부를 살펴볼 수는 없었다.
![[고침] 국제([에따블라디] 고려인은 떠났지만 맷돌·묘비…)](https://img.hankyung.com/photo/202105/AKR20210523012500096_17_i_P4.jpg)
![[고침] 국제([에따블라디] 고려인은 떠났지만 맷돌·묘비…)](https://img.hankyung.com/photo/202105/AKR20210523012500096_23_i_P4.jpg)
그는 "마을에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간직해야 한다"면서 작은 전시관이지만 주민들에게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고침] 국제([에따블라디] 고려인은 떠났지만 맷돌·묘비…)](https://img.hankyung.com/photo/202105/AKR20210523012500096_02_i_P4.jpg)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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