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조성진이 2015년 '쇼팽 콩쿠르' 결선에서 선보인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 연주. / 쇼팽인스티튜트 유튜브 채널.
국내 클래식 아티스트들의 콩쿠르 우승 소식이 잇달아 들려오고 있습니다. 뛰어나고 열정적인 아티스트들의 콩쿠르 우승 소식을 들으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고 더욱 응원하게 됩니다.
이같이 콩쿠르 얘기가 전해지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데요. 국내에선 2015년부터 그 관심이 더욱 높아진 것 같습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그해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쇼팽 국제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1위를 차지한 덕분이죠.
쇼팽 콩쿠르는 많은 콩쿠르 중에서도 최고 권위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와 함께 '세계 3대 콩쿠르'로 꼽히기도 합니다. 조성진이 콩쿠르 결선에서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한 영상을 보면, 섬세하고 유려한 솜씨에 감탄하게 됩니다.
쇼팽 콩쿠르는 다른 콩쿠르와 차별점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국제 콩쿠르가 기악, 성악 등 여러 부문에 걸쳐 진행되는 것과 달리 이 콩쿠르는 오직 피아노만으로 승부를 냅니다. 참여자는 그중에서도 쇼팽의 피아노곡으로만 40여 곡을 예선부터 본선까지 연주해야 합니다. 그야말로 전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를 가리는 겁니다.
쇼팽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콩쿠르에 대해 살펴보고 나니, 피아노와 함께 했던 쇼팽의 삶이 궁금해집니다. 폴란드 출신의 음악가 프레데리크 프랑수아 쇼팽(1810~1849)은 아쉽게도 39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 짧은 삶에도 200여 곡에 달하는 작품을 남겼습니다. 몇몇 첼로 곡을 제외하고 전부 피아노 곡이었죠. 피아노를 위해 자신의 재능과 열정을 모두 바친 쇼팽의 삶과 철학을 함께 살펴보실까요.
쇼팽은 폴란드 바르샤바 근교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육군학교의 프랑스어 교사였고, 어머니는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였습니다. 쇼팽은 어머니의 재능을 물려받아 어릴 때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였습니다. 4세 때부터 피아노에 관심을 보여 가족들은 그에게 피아노를 가르쳤죠.
3살 위 누나 루드비카는 피아노를 빠르게 익히는 쇼팽을 보면서, 부모님에게 좋은 선생님을 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쇼팽의 재능도 놀랍지만 어린 누나의 안목과 지혜도 대단한 것 같습니다.
이후 누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쇼팽의 재능을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쇼팽은 8세가 되던 해에 자선 축제 무대에 올라 연주도 했습니다. 이를 취재한 지역 신문사들은 그를 모차르트에 비유하며 신동의 탄생을 축하했습니다. 이 신동은 더 큰 음악 세계를 접하기 위해 유럽 연주 여행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쇼팽의 음악 인생은 곧 피아노 자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피아노에 치열하게 몰두하며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피아노의 페달을 적극 사용해 음색의 종류도 대폭 늘리고 다양한 연주법도 고안했습니다.
러시아 출신 피아니스트 드미트리 시쉬킨이 연주하는 쇼팽의 '즉흥 환상곡'./ 쇼팽인스티튜트 유튜브 채널.
쇼팽은 '피아노의 시인'이라 불리기도 하죠. 그의 작품들이 마치 시를 읊는 것처럼 부드럽고 아름답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음악을 '잔잔하다' '서정적이다'고만 생각 하는데요.
오히려 그의 작품 중엔 엄청난 기교가 들어가 있고 대범함이 돋보이는 곡들이 많습니다. 그가 작곡한 19곡의 '왈츠'는 화려한 테크닉이 두드러지고, 21곡의 '녹턴(야상곡)' 중엔 낭만적이면서도 웅장하고 극적인 작품들이 다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쇼팽의 '즉흥 환상곡'을 들으면, 현란한 테크닉에 빠져 시원하고 짜릿한 기분까지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정도 천재 피아니스트라면 자신만만했을 법도 한데요. 실제 쇼팽의 성격은 내성적이고 다소 소심했다고 합니다. 좋아하던 여성에게 쉽게 다가가지도 못했죠.
그런 그가 6살 연상의 프랑스 소설가 조르주 상드와 사랑에 빠진 얘기는 유명합니다. 상드는 쇼팽과 달리 자유분방하고 열정적인 성격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상반된 성격에도 9년 넘게 연인으로 지냈습니다. 하지만 상드는 어느 날 그에게 이별 통보를 했고, 쇼팽은 오랜 시간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습니다.
쇼팽의 삶과 음악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단어는 고국인 폴란드입니다. 쇼팽을 1830년 바르샤바에서 오스트리아 빈으로 떠났는데요. 빈에 도착한 지 일주일 만에 바르샤바에선 혁명이 일어났고, 이들은 러시아군에 의해 진압됐습니다.
이때부터 쇼팽은 러시아에 점령된 고국에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가지 못하는 신세가 됐습니다. 이후 그는 프랑스 파리로 가 음악 활동을 이어가면서도 고국을 애타게 그리워했습니다. '혁명'이란 곡에 그 마음을 담아 폴란드로 보내기도 했죠. 하지만 폴란드는 1918년이 되어서야 러시아로부터 독립했습니다. 쇼팽은 결핵에 걸려 세상에 떠나기 전까지 고국의 땅을 한번도 밟지 못했습니다.
로만 폴란스키의 영화 '피아니스트'(2002)에서 주인공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애드리언 브로디)이 쇼팽의 '발라드 1번'을 치던 장면을 기억하시나요. 폐허가 된 빈집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은 이 영화의 명장면으로 꼽힙니다. 피아노 건반 위에 설렘, 사랑, 열정, 환희, 그리움, 애국심까지 모든 감정의 꽃을 피워낸 쇼팽의 마음이 아름다운 선율을 타고 절절히 흐르는 것 같습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