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노조의 지난달 23일 파업 모습. 현대중공업 노조 제공
현대중공업 노조의 지난달 23일 파업 모습. 현대중공업 노조 제공
"5월이 두렵습니다." 1분기 기대 이상의 실적을 낸 기업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정작 해당 기업에 몸담고 있는 이들의 표정은 어둡다. 넘기 쉽지 않은 장벽들이 눈 앞에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2분기 실적이 나빠질 것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부 기업의 관계자들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종류의 위기가 왔다"며 "해결책이 마땅치 않은 게 가장 큰 문제"라고 토로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지주는 2017년 4월 지주사 체제가 출범한 이후 최대 실적을 거뒀다. 정유와 기계, 조선 등 대부분 부문이 모두 좋은 실적을 냈다. 현대오일뱅크는 4128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현대건설기계는 797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이는 2017년 회사가 만들어진 이후 최대 실적이다. 한국조선해양도 675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 적자에서 벗어났다.

현대중공업그룹의 리스크는 노동조합이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수시로 파업을 하고 있다. 지난달 20~22일 부서별 파업, 23일 전 노조원 4시간 부분파업, 28~29일 부서별 파업에 이어 지난달 30일엔 전 노조원이 7시간 파업을 강행했다. 올 들어 전 노조원이 참여하는 파업만 해도 벌써 세 번째다. 파업에 참가한 노조원들은 오토바이를 몰고 공장을 돌며 경적 시위를 벌였다.

이 회사 노사는 2019년, 2020년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을 아직 마무리하지 못했다. 올해 3년치 교섭을 한꺼번에 해야할 가능성이 크다. 노조는 기본급 인상과 교섭 재개 등을 요구하면서 파업을 하고 있다. 회사는 답답해 한다. 이미 두 차례 잠정합의안을 마련했는데, 그 때마다 노조원 대상 찬반투표에서 부결된 상황이라 추가 협상이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현대중공업 노조의 지난달 23일 파업 모습. 현대중공업 노조 제공
현대중공업 노조의 지난달 23일 파업 모습. 현대중공업 노조 제공
현대중공업 노사는 지난 3월 2019년분 기본급을 4만6000원 올리고, 2020년분 기본급을 동결하는 내용의 합의안을 만들었다. 성과급, 격려금, 복지포인트 등 일시금은 기본급과 별도로 지급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합의안은 결국 찬반투표를 넘지 못했다. 찬성률은 45.1%에 그쳤다. 두 번째 부결이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노조 지도부가 동의한 합의안이 투표에서 부결되면, 자신들이 노조원을 더 설득하거나 자신들의 정치력 부재를 반성해야 한다"며 "노조 지도부는 부결을 무기로 삼아 임금을 더 올려달라고 회사를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와중에 일부 사무직 직원들은 별도 노조를 만들겠다고 나서고 있다. 사무직 노조가 만들어지면 별도 성과급 지급 등을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회사는 수시로 파업을 하는 기존 생산직 노조와 임금을 대폭 올려달라는 사무직 노조를 모두 상대해야 할 판이다. 이런 상황에 처한 기업들은 많다. 현대자동차가 대표적이다. 기존 생산직 노조는 올해 기본급을 큰 폭으로 올리겠다고 '선전포고'를 했고, 사무직 직원들은 별도 노조를 설립했다.

현대차와 기아는 노조 문제 외에도 골치아픈 일이 있다. 바로 반도체 공급난이다. 자동차에는 200~400개의 반도체가 들어가는데, 최근 차량용 반도체가 없어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이 공장을 멈춰세우는 일이 허다하게 벌어지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는 그나마 잘 버텨왔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최근에는 반도체 공급난의 직격탄을 맞기 시작했다.

현대차는 5년 만에 최고 성적을 냈고, 기아는 사상 다섯 번째로 좋은 실적을 거둔 지난달 22일 "2분기가 걱정스럽다"는 전망을 내놨다. 현대차와 기아는 콘퍼런스콜에서 "글로벌 판매는 작년보다 늘어날 것으로 기대되지만 반도체 부족 현상에 따른 생산 차질은 2분기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며 "5월이 차량용 반도체 수급이 가장 어려운 시점, 즉 보릿고개일 것으로 본다"고 우려했다. 현대차와 기아는 이달 중 공장 가동중단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전 공장이 반도체가 부족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공급난은 자동차 회사 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장부품을 만드는 LG전자와 스마트폰을 제조하는 삼성전자 등도 반도체 부족으로 2분기 생산에 일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삼성전자는 '총수 부재' 리스크도 떠안고 있다. 경제계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사면시켜 글로벌 반도체 전쟁에 활용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아직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지난달 본지 인터뷰를 통해 이 부회장의 사면을 공론화했고, 이후 5개 경제단체는 공동으로 이 부회장의 사면을 요청하는 건의서를 청와대에 제출했다. 하지만 청와대 관계자는 "현재까지는 검토한 바 없으며, 현재로서는 검토할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경제계 관계자는 "반도체 시장은 누가 적기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는 지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며 "삼성전자에서 대형 투자를 결정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인 수감 상태라 자칫하면 글로벌 반도체 패권경쟁에서 밀릴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기업에서도 걱정의 목소리가 많이 나온다. 한 대기업 임원은 "코로나19가 확산됐던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하면 실적이 좋아 보이지만, 정작 기업 내부에서는 최악의 위기 상황이라는 우려가 많다"며 "자칫하면 수렁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 속에서 경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정부와 정치권은 한국 기업들이 여유가 있는 상황이라 이들에게 부담을 주는 정책을 펴도 된다고 착각하고 있다"며 "한국 기업들이 벼랑 끝에 서서 절박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도병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