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서구 아파트 단지에 수년째 쇠백로 둥지…소음·악취 등 민원 야기
민원 발생 때마다 나무 베어버려…서식지 마련은 '요원'
[르포] 도심 속 서글픈 '셋방살이' 철새 떼…머나먼 공존의 길
"깍, 까아악~"
7일 오전 광주 서구 화정동의 한 아파트 단지 화단 나무.
머리를 등에 닿을 만큼 뒤로 젖힌 쇠백로가 목을 부풀어 올려 큰 울음을 내뱉는다.

"시끄럽다 이놈들아. 지긋지긋하게 올해도 또 왔네."
길을 가던 아파트 주민이 땅을 힘차게 차며 내뱉는 성화에 쇠백로는 하늘을 크게 한 바퀴 돌아 떠나는 시늉만 한 뒤 다시 제자리에 앉아 작은 울음을 토해낸다.

올해 어림잡아 40여 마리 쇠백로가 이곳 주변 아파트 단지를 다시 찾았다.

[르포] 도심 속 서글픈 '셋방살이' 철새 떼…머나먼 공존의 길
몸길이가 60㎝ 내외로 작은 백로보다 작고, 검은색 부리와 다리, 노란색 발가락 등이 특징인 쇠백로가 이 아파트 단지에 봄철마다 출몰하기 시작한 것은 2018년부터다.

많을 때는 100여마리가 이 아파트 단지에서 여름철까지 살다 떠난다.

봄철 이곳을 찾는 쇠백로 대부분이 머리에 두 가닥의 깃 장식을 달고, 붉은 눈을 하는 등 번식기에 나타나는 모습을 하고 있어, 아마도 알을 낳아 품고 새끼를 기를 둥지를 만들 곳을 찾아 광주천 등 주변 하천에 깃든 것으로 보인다.

백로는 예부터 희고, 깨끗한 외형에 시문(詩文)이나 화조화(花鳥畵)의 단골 소재였고, 청렴한 선비를 상징해 왔다.

그러나 해마다 쇠백로 '하숙생'을 받는 주민들에게 이들은 불청객일 뿐이다.

[르포] 도심 속 서글픈 '셋방살이' 철새 떼…머나먼 공존의 길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울음을 토해 소음 피해, 배설물을 화단과 주차 차량에 쏟아내 악취 피해, 털갈이 시기에는 하얀 털까지 날려 좋아하려야 반길 수 없다는 것이 주민들의 고충이다.

멸종위기 등급 '관심 대상'인 쇠백로를 무작정 내쫓을 수 없어 백로가 둥지를 트는 아파트 화단 침엽수 등의 가지를 베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쇠백로의 방문은 숫자만 조금 줄었을 뿐, 활엽수인 다른 나무로 옮겨가 불편한 동거를 계속하고 있다.

철새 떼가 광주 도심에서 둥지를 틀어 주민 민원을 야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과거에는 북구 동림동 운암산 자락에 2천여마리 철새 떼가 둥지를 틀었다가 주변 서식지 환경이 변하면서 곳곳으로 주변 산 등 여러 곳으로 흩어졌다.

[르포] 도심 속 서글픈 '셋방살이' 철새 떼…머나먼 공존의 길
그중 한 무리가 2009년부터 수년 동안은 서구 농성동 광천초등학교 인근 향나무숲에200여 마리의 철새 떼가 둥지를 틀어 주민 불편이 발생했다.

그때도 지자체 등은 향나무를 베어버리는 고육책으로 철새 떼를 쫓았다.

그리고는 공존을 모색하기 위해 서식지 환경 조성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으나, 도심 속 철새들은 올해도 갈 곳을 찾지 못해 도심 속 아파트 단지에 불편한 '셋방살이'를 반복하고 있다.

올해도 반복되는 주민 민원에 구청 등 관계 당국은 생태공원 조성 등 서식지 조성 대안을 다시 꺼내 들었지만, 쇠백로에게는 '내 집 마련의 꿈'이 요원하다.

[르포] 도심 속 서글픈 '셋방살이' 철새 떼…머나먼 공존의 길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