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건립 태백시 화광아파트 표지석 동판만 남아
태백시 "내진 보강 등 추가 사업비 과다…신축으로 변경"
탄광지역 최초 아파트 보존한다더니…몽땅 철거
전국 최초의 아파트형 탄광 사택인 강원 태백시 장성동 화광아파트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태백시는 장성 탄탄마을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위해 최근 화광아파트 25개 동 전체를 철거했다.

장성 탄탄마을 도시재생은 총사업비 492억원을 투입해 문화 플랫폼 조성, 생활 인프라 개선, 주민역량 강화 등을 하는 사업이다.

화광아파트를 철거한 터에는 지상 9층 189가구 규모의 임대아파트와 문화 플랫폼이 조성된다.

태백시는 애초 23개 동만 철거하고 나머지 2개 동은 남겨 탄광 생활역사전시관, 게스트하우스, 테마상점, 공동전시관, 공중보행교 등을 갖춘 문화 플랫폼으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지속 사용이 어렵다는 안전진단 결과에 따라 모두 철거하고, 문화 플랫폼으로 사용할 2개 동을 옛 모습 그대로 신축하기로 했다.

태백시 관계자는 "내진 보강을 위한 공사에만 1개 동에 15억원 이상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과다한 추가 사업비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돼 철거 후 신축하는 방안으로 계획을 변경했다"고 말했다.

탄광지역 최초 아파트 보존한다더니…몽땅 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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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광 개발 초기 극심한 주택난으로 사택 건립 시작
태백시가 애초 2개 동을 보존하고자 했던 이유는 화광아파트의 역사적 의미이다.

탄광 개발 초기 탄광지역의 가장 큰 문제는 주택이었다.

탄광 특성상 위치가 산간 오지인데다 '검은 황금'을 찾아 전국에서 몰려온 수많은 사람으로 탄광지역은 극심한 주택난이 빚어졌다.

1950년 말 창립한 '대한석탄공사'(석공)도 1963년 정선군 신동읍에 함백사택을 건립할 때까지 일제가 지은 목조 건물을 사택으로 사용했다.

함백사택은 방 2칸짜리 2층 연립이었지만, 당시에는 보기 드문 500가구의 대단위 주택단지였다.

이후 사택 건립이 이어졌으나, 대한석탄공사는 사택에 입주하지 못한 직원에게는 보조비를 지급해야 할 정도로 공급난을 겪었다.

탄광 사택은 1973년 석유파동으로 석탄 수요가 급증하면서 대규모로 건립되기 시작했다.

석공은 1974년 1천500가구 동시 착공을 시작으로 매년 수백 가구를 지었지만, 거의 다닥다닥 붙은 블록집이었다.

탄광지역 최초 아파트 보존한다더니…몽땅 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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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최고의 직장 석공 일원이라는 자부심의 상징"
화광아파트라는 현대식 탄광 사택의 등장은 4년 후인 1978년이다.

화광아파트는 1978년 6월 30일 준공식에 석공 관계자, 기관단체장, 주민, 합창단, 밴드부, 학생 등 수백 명이 참석할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석공에 근무했던 한 주민은 "1982년 입사했지만, 1985년 결혼을 하고 나서야 화광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었다"며 "당시 화광아파트는 최고 직장이었던 석공의 일원이라는 자부심의 상징이었다"고 말했다.

이런 역사·문화적 의미를 되새기고자 장성동 주민들은 철거를 앞둔 지난해 10월 '화광아파트 장례축제'를 개최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남은 화광아파트의 흔적은 준공을 기념해 세웠던 표지석의 동판뿐이다.

김강산 태백향토문화연구소장은 31일 "역사에 남겨 기억하려면 가능한 있는 그대로 보존해야지, 다 허물고 다시 짓는 것은 의미 없는 예산 낭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태백시는 탄광 사택을 재연해 2005년 '탄광사택촌'이라는 이름의 체험관광상품으로 선보였지만, 관광객들에게 외면받으면서 사실상 방치 상태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