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혼자만의 활동이 아니므로 부득이 타인과의 관계의 호불호는 인생에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여러 유형의 사주를 정리하다 보면 이른바 사궁지수(四窮之數)라 하여 부모 형제 심지어 부부의 인연이 약한 사람들이 있다. 세상을 등지고 사는 사람들이나 사회생활의 부적응자가 되어 주변인이 되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이다.

자신의 근묘화실(根苗花實)인 육친(六親) 과의 인연은 가정생활은 물론 사회생활에서도 타인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안타깝게도 자신의 타고난 자리에 가족과의 인연이 박한 사람은 사회에서도 인생 선후배나 타인과의 인연 또한 여의치가 않다.

사회성이 좋다 인간성이 좋다 하는 말들은 대부분 타인에 의해서 만들어진 사회적인 잣대라고 하지만 아무리 남에게 잘해줘도 인덕(人德)이 없다고 여겨지거나 자신은 정말로 노력한다고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은 것은 다 자신의 타고난 자리에 인연이 없기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인연의 자리가 부족하거나 깨진 사람은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편향적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일을 처리하는데 있어서도 사고의 유연성이 부족함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숲 속에서는 나무만 보일 뿐 숲의 모습을 알 수가 없듯이 자신이 하는 일이 계속해서 풀리지 않을 때에는 잠시 그 안에서 나와 자신의 다른 모습은 없는가를 생각해 보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아무리 자신을 힘들게 하는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일을 객관화 시켜 다른 관점에서 볼 때 의외로 좋은 실마리를 찾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결국 타고난 성격의 문제를 만드는 것도 나 자신이요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자신이기에 타고난 단점과 약점을 얼마나 알고 소화해 내는 노력을 하는가에 따라 세상을 살아가는 묘미가 있다고 하겠다.



사회성이 부족한 것 같아 직장생활이 힘들다고 하는 직장인이 방문을 하였다.

이허궁(離虛宮)에 우뚝 솟은 나무는 더 올라 가려야 갈 곳이 없건만 좌우를 살피지 않고 높은 곳만 바라보며 그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항상 높은 곳에서 세상을 바라보니 모든 것이 자기 발아래로 보이는 것들뿐이다. 문득 점점 세상과 멀어지는 것 같은 생각에 바로 아래 산을 내려 보지만 그 산에는 여러 무리들이 자기들끼리만 어울리며 희희낙락(喜喜樂樂) 하고 있다.

나에게 배달되어야 할 승진이라는 감투의 자리는 오는 길을 잃은 듯 마치 번지 없는 주소처럼 건너편 산으로 배달되는 사고가 빈번히 일어난다. 직장 생활의 낙인 승진이라는 즐거움은 사라지고 만다.

외로운 곤명(坤命)자는 이제나마 그들과 어울리고 싶어 그곳의 산으로 이동을 하려고 하지만 다가갈 사다리가 보이질 않는다. 고립무원의 상태가 지속되면 삶이 힘들어지고 현실과 조직 생활에 대한 자신감 또한 점점 사라진다.

오행 중 그나마 몇 안되는 자리는 각각의 자존심을 내보이며 서로 으르렁 되고 있다. 이럴 때는 중재자의 자리가 있어야 하는데 그마저도 저 멀리 변지에서 팔짱을 끼며 구경만 하고 있다.

” 선생님! 왜 저는 사회성이 부족할까요 ?? ”

” 저는 잘 한다고 하는데 인덕이 없는 것 같고.. 성격 또한 직장 생활에 장해가 되는 것 같아 생활이 참 힘이 드네요..” 하며 하소연을 한다.



타고난 사주에 자기를 알아주고 이해하며 끌어주는 멘토의 자리가 없는 이들의 공통적인 하소연이다. 모든 이에게 멘토의 자리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멘토의 자리가 꼭 필요한 사람에게는 그 어느 자리보다 중요하다.

본인은 자신의 성격을 탓하지만 정작 사주에는 타고난 소통의 자리가 부족한 약점인 것뿐이다. 약점의 자리는 보완하면 된다. 자신의 타고난 자리를 아는 것이다.

누구에게는 장점이 타인에게는 약점이 될 수가 있고 반대로 누구에게는 단점이 타인에게는 장점이 될 수가 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만 않는다면 굳이 스스로가 자신의 약점과 단점을 헤집고 아파할 필요는 없다.

다만 불편하고 힘이 든다면 타고난 자신의 자리를 통해 자신의 성향의 장점과 단점 그리고 약점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과정을 그냥 방치해 버린다면 사궁지수(四窮之數) 말 그대로 외로운 방랑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