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한 풀어주는 국가도 잘못…떳떳하게 살아갈 희망 품게 돼"

제주 4·3사건 당시 억울하게 옥살이한 피해자 335명이 같은 날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70여 년 만에 명예를 회복했다.

'위로와 감사' 넘쳐난 제주4·3 수형인 재심 재판정
제주지법 형사2부(장찬수 부장판사)는 16일 국방경비법 위반 및 내란실행 등의 혐의로 억울하게 수감됐던 수형인 335명에 대한 공판을 열고 이들 모두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날 재판은 21개 사건으로 나뉘어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릴레이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번 재판은 그동안 열린 단일 사건 재판 중에서 가장 많은 피고인이 법정에 서는 전국 최대 규모의 재판인 것으로 파악되면서 관심이 쏠렸다.

특히 이날 판결을 맡은 제주지법 제2형사부 장찬수 부장판사는 장장 8시간에 걸친 재판을 진행하면서도 유족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을 잊지 않으면서 잔잔한 감동을 줬다.

유족은 그동안의 한 맺힌 서러움을 토해냈다.

◇ "제주에 흐드러진 봄꽃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장 부장판사는 2020재고합1호 사건에서 故 박세원 씨 등 13명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린 후 "국가로서 완전한 정체성을 갖지 못한 시기에 일어난 극심한 이념 대립 속에 피고인들은 목숨마저 빼앗기고, 그 유족은 연좌제의 굴레에 갇혀 살아왔다"며 첫 마디를 뗐다.

그는 "오늘 선고로 피고인들과 유족에게 덧씌워졌던 굴레가 벗겨져 앞으로 마음 편히 둘러앉아 정을 나눌 수 있길 바란다"며 "우리들도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다짐하는 날이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장 판사는 이어진 2호 사건 재판에서도 따뜻한 말로 유족을 위로했다.

그는 제주에 흐드러지게 핀 봄꽃을 언급하면서 "피고인들이 얼마나 이 광경을 보고 싶었을까 싶다.

이들의 억울함이 오늘의 선고로 풀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특히 "유족 여러분은 죄가 없다.

대한민국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으니 마음 편하게 가지시길 바란다"는 말로 유족의 응어리진 한을 풀도록 했다.

◇ '고통은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느끼는 것이라 했다'
장 판사는 재판 과정에서 책의 한 구절을 가져오기도 했다.

장 판사는 11호 사건 재판에서 이희선 작가의 책 '내가 좋아하는 것들, 제주'의 한 문장인 '고통은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느끼는 것이라 했다'를 읽어보기도 했다.

장 판사는 "작가는 제주 이주민으로 7년간 살면서 4·3에 대해 알게 됐다고 한다"며 "작가는 4·3에 대해 제대로 알면 제주도 사람이 왜 처음 보는 이들에게 입을 다물 수밖에 없는지, 속을 먼저 내어주지 못하는지 안다고도 썼다"고 말했다.

'위로와 감사' 넘쳐난 제주4·3 수형인 재심 재판정
그러면서 거듭 이날 무죄 판결로 유족이 위안을 삼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아울러 장 판사는 무죄 판결 후에도 계속해서 서러움을 토해내는 유족을 향해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다"며 "이제야 한을 풀어주는 국가도 잘못이 있다"며 소신 발언을 해 눈길을 끌었다.

◇ "너무 떨려, 하고 싶은 말 많은데…."
유족은 70여 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아 그동안의 누명을 풀면서 벅찬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故 강윤식 씨의 딸 강방자 씨는 "이 순간 너무 떨린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6살 때 아버지를 여읜 강씨는 "내가 죽기 전에 그동안 이유도 모른 채 찍힌 낙인을 지우고 싶었다"며 "내가 79살이 돼서야 드디어 아버지가 무죄판결을 받게 됐다"고 말했다.

강씨는 "한 편으로는 기쁘고 한 편으로는 숙연해진다"며 "모두 고생이 많으셨다고 말하고 싶다"고 전했다.

故 박세원 씨의 아들 박영수 씨도 무죄 판결을 내린 재판부를 향해 "정말 감사드린다"며 "가슴이 떨려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는다"며 자신의 심경을 표현했다.

박씨는 "오늘 재판을 받기 위해 저승에서 온 330여 명의 영혼에 절을 올리려고 했는데 법원 내에서 절을 올리는 것은 금지라고 해 대신 지금 묵례를 올리겠다"면서 짧은 묵례를 하며 눈물을 훔쳤다.

'위로와 감사' 넘쳐난 제주4·3 수형인 재심 재판정
◇ "더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는 희망 품게 돼"
무죄를 선고받은 기쁨만큼 함께하지 못한 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북받치기도 했다.

행방불명된 형님(당시 18살)을 대신에 피고인석에 선 장정언 씨는 "제 어머니는 해녀"라며 "매일 바다에 나가는 어머니를 보고 동네 사람들이 '지치지도 않느냐'고 물으면 '아들 만나러 감져'(아들 만나러 간다의 제주어)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장씨는 "매일 같이 아들을 만난다고 하셨던 어머니는 결국 돌아가시기 전까지 아들을 만나지 못하셨다"고 눈물을 훔쳤다.

그는 "오늘 무죄판결로 유족은 비로소 평화를 찾게 됐다"며 "힘을 내 서로 도우며 상생하고 더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을 품게 됐다"고 말했다.

故 송태진 씨의 딸 송인범 씨는 "아버지가 마포형무소에 수감됐을 당시 돈을 보내달라는 편지를 집으로 보냈었다"며 "언젠가는 형무소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편지를 보냈을 텐데 여태껏 아버지는 그 꿈을 이루시지 못했다"며 끝내 눈물을 터뜨렸다.

dragon.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