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 출근해 자신의 거취 관련 입장을 밝히던 중 눈을 감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 출근해 자신의 거취 관련 입장을 밝히던 중 눈을 감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전격적으로 사의를 표명한 데 이어 검찰을 향해 "더 이상 검찰이 파괴되고 반부패시스템이 붕괴되는 것을 지켜만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윤석열 총장은 이날 사의 입장문 발표 후 별도의 '검찰가족께 드리는 글'을 통해 "검찰의 수사권 폐지와 중대범죄수사청 설치는 검찰개혁이 아니다"라며 이같이 밝혔다.

윤석열 총장은 "중수청 설치 등은 대한민국 법치주의를 심각히 훼손하는 것"이라며 "형사사법 제도는 국민들의 생활과 직접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한 번 잘못 설계되면 국민 전체가 고통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주요 사법 선진국에서도 중대사건에 대하여는 모두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보장하고 있다"면서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시도는 사법 선진국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검찰이 그동안 수사와 재판을 통해 쌓아온 역량과 경험은 검찰의 것이 아니라 국민의 자산이다"라며 "검찰 수사권이 완전히 박탈되고 검찰이 해체되면 70여년이나 축적되어 온 국민의 자산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특권층의 치외법권 영역이 발생하여 결과적으로 국민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검찰의 형사법 집행 기능은 국민 전체를 위해 공평하게 작동되어야 한다"면서 "그것이 민주주의이고, 법치주의다"라고 강조했다.

윤석열 총장은 "저는 작년에 부당한 지휘권 발동과 징계 사태 속에서도 헌법 정신과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해 직을 지켰다"면서 "검찰총장에서 물러나는 것은 검찰의 권한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정의와 상식,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윤석열 검찰총장의 '검찰가족께 드리는 글' 입장문 전문.


검찰가족 여러분!

검사의 수사지휘권이 폐지되고 검찰의 직접수사 영역이 부패범죄 등 6대 중대범죄로 한정된 지 이제 두 달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검찰의 직접수사를 최대한 자제하여 꼭 필요한 범위에 한정하도록 노력해 왔습니다.

새로 시행된 형사사법 제도에 적응하시느라 애를 많이 먹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최근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여 검찰을 해체하는 내용의 법안들이 발의되어 더 혼란스럽고 업무 의욕도 많이 떨어졌으리라 생각됩니다.

여러분들도 현 상황에 대해 분노하면서 걱정하고 계실 것입니다.
총장으로서 안타깝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저는 이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해 헌법이 부여한 저의 마지막 책무를 이행하려고 합니다.

오늘 검찰총장의 직을 내려놓습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공정한 검찰, 국민의 검찰’을 목표로 최선을 다했으나, 더 이상 검찰이 파괴되고 반부패시스템이 붕괴되는 것을 지켜만 볼 수는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개인이나 검찰조직의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오직 국민만을 바라보며 일해 왔다고 자부합니다.

검찰의 수사권 폐지와 중대범죄수사청 설치는 검찰개혁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법치주의를 심각히 훼손하는 것입니다.

형사사법 제도는 국민들의 생활과 직접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한 번 잘못 설계되면 국민 전체가 고통을 받게 됩니다.

수사와 재판 실무를 제대로 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러한 졸속 입법이 나라를 얼마나 혼란에 빠뜨리는지 모를 것입니다.

수사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재판을 위한 준비활동입니다.
수사와 기소는 성질상 분리할 수 없습니다.

모든 수사를 검찰이 다 하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사안의 난이도, 사회적 중대성, 인력 사정 등을 고려하여 경찰이 자체적으로 수사를 완료하는 경우도 있고, 경찰이 검찰의 조언을 받아 수사를 진행하거나 경찰이 검찰과 합동으로 협의하여 수사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에서 힘을 가진 사람이 저지른 중대범죄에 대해서는 검찰이 직접 수사해서 소추여부를 결정하고, 최종심 공소유지까지 담당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공동체의 근간을 흔드는 권력형 비리나 대규모 금융·경제 범죄에 대해
사법적 판결을 통해 법집행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재판 과정에서 힘 있는 자들은 사소한 절차와 증거획득 과정에 대해 문제를 삼는 경우가 많아
처음부터 수사에 관여하지 않은 검사는 이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중대범죄에서 수사는 짧고 공판은 길다는 것, 진짜 싸움은 법정에서 이루진다는 것을 우리는 매일 경험하고 있습니다.

나날이 지능화, 조직화, 대형화되어 가는 중대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수사·기소를 하나로 융합해 나가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주요 사법 선진국에서도 중대사건에 대하여는 모두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시도는 사법 선진국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일입니다.

검찰이 그동안 수사와 재판을 통해 쌓아온 역량과 경험은 검찰의 것이 아니라 국민의 자산입니다.

검찰 수사권이 완전히 박탈되고 검찰이 해체되면 70여년이나 축적되어 온 국민의 자산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특권층의 치외법권 영역이 발생하여 결과적으로 국민들이 피해를 입게 됩니다.

검찰의 형사법 집행 기능은 국민 전체를 위해 공평하게 작동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민주주의이고, 법치주의입니다.

저는 작년에 부당한 지휘권 발동과 징계 사태 속에서도 직을 지켰습니다.
헌법 정신과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여러분들께서 보내주신 지지와 응원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제 그토록 어렵게 지켜왔던 검찰총장의 직에서 물러납니다.
검찰의 권한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 사회의 정의와 상식,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검찰가족 여러분!
엄중하고 위급한 상황이지만, 국민들만 생각하십시오.
동요하지 말고 항상 국민을 섬기는 자세로 본연의 업무에 최선을 다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지금껏 총장직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여러분들의 덕분이었습니다.

끝까지 여러분들과 함께 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동안 제게 주신 과분한 사랑에 머리 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2021. 3. 4.

검찰총장 윤 석 열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