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제주문화] ④ 제주신화를 알면 마을의 역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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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적 은유와 상징 통해 마을의 역사 알려줘
공동체 무사안녕 비는 소박한 믿음…결속 강화
제주에는 많은 자연마을(자연촌)이 있다.
읍ㆍ면ㆍ동ㆍ리 등 행정적 마을 단위와는 차이가 있는 자연마을은 인간 생활의 기본단위인 가족 등이 모여 자연적으로 발생한 촌락이다.
혹자는 제주에 300여개의 또는 400여개의 자연마을이 있었다고 말한다.
제주시와 서귀포시에 따르면 2월 현재 제주에 있는 자연마을은 모두 618개다.
이들 마을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우리는 제주 신화(본풀이)를 통해 설촌(設村)의 역사를 엿볼 수 있다.
◇ 당신화의 원조 송당마을
당본풀이는 제주 각 마을의 성소라 할 수 있는 신당에 좌정한 신들의 이야기다.
나라에 건국 신화가 있듯이 마을의 형성 과정을 담은 일종의 마을 형성 신화가 당본풀이다.
당본풀이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송당본풀이'다.
송당 마을에선 매년 정월 13일(음력 1월 13일)에 신과세제(神過歲製)라는 마을제를 연다.
신과세제는 마을 사람들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 주민과 학자, 예술인, 관광객들도 참여하는 당굿이다.
신께 감사의 세배를 올리고 가정과 새해 행운을 기원하는 날로, 올해는 사흘 후인 오는 24일 열릴 예정이다.
이날 심방('무당'을 뜻하는 제주어)은 당굿을 하면서 송당본풀이를 노래한다.
송당본풀이의 내용을 보면 중국 강남천자국의 백모래밭에서 솟아난 '백주또'(금백주할망)가 오곡의 종자와 송아지, 망아지를 끌고 제주로 내려온다.
이 여신은 제주 섬에서 솟아나 한라산에서 사냥을 업으로 삼던 '소로소천국'과 혼인하고 가정을 이루게 된다.
이어 남편이 된 소천국에게 사냥 대신 농사를 짓고 살도록 권한다.
백주또와 소천국은 아들 18명, 딸 28명을 낳았고 이 자식들이 또 아들과 딸들을 낳는 등 계속해서 뻗고 뻗어 그 후손이 378명이 됐다.
특히, 백주또와 소천국의 여섯째 아들은 아버지 소천국의 미움을 받아 무쇠로 된 상자에 담겨 바다로 보내졌지만, 동해용왕국의 사위가 돼 강남천자국의 난을 평정하고 제주에 돌아와 김녕마을에 좌정해 당신이 됐다.
내용을 간략하게 줄여 설명했지만, 직접 읽어보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이다.
송당본풀이는 송당 마을의 시작을 보여준다.
백주또와 소천국의 결합이란 모티프(신화소)를 통해 사냥하며 떠돌아다니던 사람들이 비로소 송당리에서 농사를 짓고 정착생활을 했으며,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했음을 신화적 은유와 상징을 통해 표현한 것이다.
또 백주또와 소천국의 자손들이 모두 제주도 전역으로 뻗어나가 각기 다른 마을의 당신으로 좌정했는데, 이 때문에 송당본향당이 제주 신당의 원조라고 하고 백주또를 제주 당신의 어머니라고 일컫는 것이다.
많은 학자는 탐라국 건국신화인 고·양·부 삼성신화의 기원을 바로 송당본풀이에서 찾기도 한다.
고·양·부 3신인이 땅에서 솟아난 점과 3여신이 제주에 표착해 그 배필이 됐다는 점 등 삼성신화의 여러 모티프가 송당본풀이 안에 그대로 담겨있기 때문이다.
◇ 공동체 결속 강화하는 마을제
제주에는 마을마다 신당이 있다.
'왜 그럴까?' 생각을 하다 보면 결국엔 마을 형성의 시작과 공동체의 무사안녕을 비는 소박한 믿음에서 비롯됐음을 알 수 있다.
민속학자 문무병 박사에 따르면 제주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난 고향을 '본향'(本鄕)이라고 했다.
'어머니의 몸에서 나와 탯줄을 태워 묻은 땅이자 뿌리를 내린 땅'이란 뜻이다.
제주의 마을에는 마을을 지켜주는 '본향신'이 있고, 신을 모신 신당인 '본향당'(本鄕堂)이 있다.
송당마을에 백주또가 좌정해 송당본향당에 모셔진 것과 같다.
당신이 마을과 각 가정을 지켜주는 건 물론 농사와 해상 안전, 치병(治病), 산육(産育) 등을 관장한다고 믿는 본향당 신앙은 마을 형성을 전제로 한다.
수렵 생활 또는 어로 활동을 하며 이동하던 씨족 중심의 소집단들이 농경 생활을 통해 일정한 거주지에 정착하게 됐다.
이 과정이 제주신화에는 산신과 농경신의 결혼모티프로 나타났다.
본향신이 마을에 좌정하면서 본향당을 중심으로 단단한 마을공동체가 형성된 것이다.
이처럼 본향당 신앙은 농경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농사를 짓는 1년을 주기로 본향당에선 다양한 마을제가 열린다.
한 해를 시작할 때 본향신에게 세배를 올리고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는 신과세제, 하절기에는 장마철 곰팡이가 슬어 눅눅해진 신당과 신의(神衣)를 청소하고 농사와 축산의 풍요와 번성을 기원하는 마불림제(백중제), 풍년 농사에 보답하기 위해 본향신에게 감사드리는 추수 감사 의례인 '시만국대제' 등은 본향신을 위한 당굿이며 지금까지 제주 각 마을에서 이어지고 있다.
땅 농사와 바다 농사를 병행하는 바닷가 마을에선 영등굿, 해신제를 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특히, 송당본향당에서는 신과세제(음력 1월 13일), 영등굿(〃 2월 13일), 마불림제(〃 7월 13일), 시만국대제(〃 10월 13일) 등 마을제가 각각 행해지는데 송당리마을제는 1986년 4월 10일 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돼 보호, 전승되고 있다.
본향당 신앙은 당굿을 통해 혈연, 지연으로 얽힌 마을 공동체의 결속을 강화한다.
제주에는 당굿 외에도 유교식 마을제인 포제(酺祭)도 행해진다.
문무병 박사는 "조선조에 들어 남성 우위의 유교적 봉건 질서가 확립되고, 무속을 천시해 굿을 유교식 제사로 바꾸는 과정에서 마을의 정치적 질서와 관련된 형식 의례로 포제가 생겼다"고 설명한다.
당굿과 포제는 원래 하나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여성이 주도하는 마을굿(당굿)과 남성이 주도하는 유교식 마을제로 분리됐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제주에선 새해를 맞아 바다에서의 안전한 조업과 풍어를 기원하는 해신제(海神祭)가 바닷가 마을마다 열리는데 어떤 마을에선 축문을 읽는 유교식 해신제를 지낸 뒤 다음날 바다에서 심방을 데려다 요왕굿을 하기도 한다.
[※ 이 기사는 '제주도 본향당 신앙과 본풀이'(문무병 저), '제주도 본풀이와 주변신화'(허남춘 저), '조근조근 제주신화 1·2·3'(여연·신예경·문희숙·강순희 저) 등 책자를 참고해 제주신화를 소개한 것입니다.
]
/연합뉴스
공동체 무사안녕 비는 소박한 믿음…결속 강화
제주에는 많은 자연마을(자연촌)이 있다.
읍ㆍ면ㆍ동ㆍ리 등 행정적 마을 단위와는 차이가 있는 자연마을은 인간 생활의 기본단위인 가족 등이 모여 자연적으로 발생한 촌락이다.
혹자는 제주에 300여개의 또는 400여개의 자연마을이 있었다고 말한다.
제주시와 서귀포시에 따르면 2월 현재 제주에 있는 자연마을은 모두 618개다.
이들 마을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우리는 제주 신화(본풀이)를 통해 설촌(設村)의 역사를 엿볼 수 있다.
◇ 당신화의 원조 송당마을
당본풀이는 제주 각 마을의 성소라 할 수 있는 신당에 좌정한 신들의 이야기다.
나라에 건국 신화가 있듯이 마을의 형성 과정을 담은 일종의 마을 형성 신화가 당본풀이다.
당본풀이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송당본풀이'다.
송당 마을에선 매년 정월 13일(음력 1월 13일)에 신과세제(神過歲製)라는 마을제를 연다.
신과세제는 마을 사람들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 주민과 학자, 예술인, 관광객들도 참여하는 당굿이다.
신께 감사의 세배를 올리고 가정과 새해 행운을 기원하는 날로, 올해는 사흘 후인 오는 24일 열릴 예정이다.
이날 심방('무당'을 뜻하는 제주어)은 당굿을 하면서 송당본풀이를 노래한다.
송당본풀이의 내용을 보면 중국 강남천자국의 백모래밭에서 솟아난 '백주또'(금백주할망)가 오곡의 종자와 송아지, 망아지를 끌고 제주로 내려온다.
이 여신은 제주 섬에서 솟아나 한라산에서 사냥을 업으로 삼던 '소로소천국'과 혼인하고 가정을 이루게 된다.
이어 남편이 된 소천국에게 사냥 대신 농사를 짓고 살도록 권한다.
백주또와 소천국은 아들 18명, 딸 28명을 낳았고 이 자식들이 또 아들과 딸들을 낳는 등 계속해서 뻗고 뻗어 그 후손이 378명이 됐다.
특히, 백주또와 소천국의 여섯째 아들은 아버지 소천국의 미움을 받아 무쇠로 된 상자에 담겨 바다로 보내졌지만, 동해용왕국의 사위가 돼 강남천자국의 난을 평정하고 제주에 돌아와 김녕마을에 좌정해 당신이 됐다.
내용을 간략하게 줄여 설명했지만, 직접 읽어보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이다.
송당본풀이는 송당 마을의 시작을 보여준다.
백주또와 소천국의 결합이란 모티프(신화소)를 통해 사냥하며 떠돌아다니던 사람들이 비로소 송당리에서 농사를 짓고 정착생활을 했으며,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했음을 신화적 은유와 상징을 통해 표현한 것이다.
또 백주또와 소천국의 자손들이 모두 제주도 전역으로 뻗어나가 각기 다른 마을의 당신으로 좌정했는데, 이 때문에 송당본향당이 제주 신당의 원조라고 하고 백주또를 제주 당신의 어머니라고 일컫는 것이다.
많은 학자는 탐라국 건국신화인 고·양·부 삼성신화의 기원을 바로 송당본풀이에서 찾기도 한다.
고·양·부 3신인이 땅에서 솟아난 점과 3여신이 제주에 표착해 그 배필이 됐다는 점 등 삼성신화의 여러 모티프가 송당본풀이 안에 그대로 담겨있기 때문이다.
◇ 공동체 결속 강화하는 마을제
제주에는 마을마다 신당이 있다.
'왜 그럴까?' 생각을 하다 보면 결국엔 마을 형성의 시작과 공동체의 무사안녕을 비는 소박한 믿음에서 비롯됐음을 알 수 있다.
민속학자 문무병 박사에 따르면 제주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난 고향을 '본향'(本鄕)이라고 했다.
'어머니의 몸에서 나와 탯줄을 태워 묻은 땅이자 뿌리를 내린 땅'이란 뜻이다.
제주의 마을에는 마을을 지켜주는 '본향신'이 있고, 신을 모신 신당인 '본향당'(本鄕堂)이 있다.
송당마을에 백주또가 좌정해 송당본향당에 모셔진 것과 같다.
당신이 마을과 각 가정을 지켜주는 건 물론 농사와 해상 안전, 치병(治病), 산육(産育) 등을 관장한다고 믿는 본향당 신앙은 마을 형성을 전제로 한다.
수렵 생활 또는 어로 활동을 하며 이동하던 씨족 중심의 소집단들이 농경 생활을 통해 일정한 거주지에 정착하게 됐다.
이 과정이 제주신화에는 산신과 농경신의 결혼모티프로 나타났다.
본향신이 마을에 좌정하면서 본향당을 중심으로 단단한 마을공동체가 형성된 것이다.
이처럼 본향당 신앙은 농경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농사를 짓는 1년을 주기로 본향당에선 다양한 마을제가 열린다.
한 해를 시작할 때 본향신에게 세배를 올리고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는 신과세제, 하절기에는 장마철 곰팡이가 슬어 눅눅해진 신당과 신의(神衣)를 청소하고 농사와 축산의 풍요와 번성을 기원하는 마불림제(백중제), 풍년 농사에 보답하기 위해 본향신에게 감사드리는 추수 감사 의례인 '시만국대제' 등은 본향신을 위한 당굿이며 지금까지 제주 각 마을에서 이어지고 있다.
땅 농사와 바다 농사를 병행하는 바닷가 마을에선 영등굿, 해신제를 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특히, 송당본향당에서는 신과세제(음력 1월 13일), 영등굿(〃 2월 13일), 마불림제(〃 7월 13일), 시만국대제(〃 10월 13일) 등 마을제가 각각 행해지는데 송당리마을제는 1986년 4월 10일 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돼 보호, 전승되고 있다.
본향당 신앙은 당굿을 통해 혈연, 지연으로 얽힌 마을 공동체의 결속을 강화한다.
제주에는 당굿 외에도 유교식 마을제인 포제(酺祭)도 행해진다.
문무병 박사는 "조선조에 들어 남성 우위의 유교적 봉건 질서가 확립되고, 무속을 천시해 굿을 유교식 제사로 바꾸는 과정에서 마을의 정치적 질서와 관련된 형식 의례로 포제가 생겼다"고 설명한다.
당굿과 포제는 원래 하나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여성이 주도하는 마을굿(당굿)과 남성이 주도하는 유교식 마을제로 분리됐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제주에선 새해를 맞아 바다에서의 안전한 조업과 풍어를 기원하는 해신제(海神祭)가 바닷가 마을마다 열리는데 어떤 마을에선 축문을 읽는 유교식 해신제를 지낸 뒤 다음날 바다에서 심방을 데려다 요왕굿을 하기도 한다.
[※ 이 기사는 '제주도 본향당 신앙과 본풀이'(문무병 저), '제주도 본풀이와 주변신화'(허남춘 저), '조근조근 제주신화 1·2·3'(여연·신예경·문희숙·강순희 저) 등 책자를 참고해 제주신화를 소개한 것입니다.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