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일본인의 달라진 지진관
루스 베네딕트, 부르스 케이런 같은 서구 인류학자들은 일본인을 ‘숙명론자’로 분류하곤 했다. 그런 평을 듣는 이유로 일본인들은 지진 태풍 같은 자연재해가 잦지만 사방이 바다로 막혀 있어 재난을 피할 방도가 없다는 점을 꼽았다. 그들이 ‘쇼가나이(어쩔 수 없다)’나 ‘시카타나이(하는 수 없다)’ 같은 체념의 표현을 입에 달고 사는 것도 자연스런 일이다.

일본이 겪는 재해 중에는 지진이 가장 흔하다. 사람이 감지할 수 있는 지진이 지난해에만 1714회나 발생했다. 12단계의 메르칼리 진도(MMI)를 채용한 대다수 국가와 달리, 일본은 ‘진도7’을 최고치로 공포감을 둔화시킨 일본기상청 진도(JMA)를 고수하고 있다. 그럼에도 ‘가옥이 심하게 흔들리고, 물이 담긴 그릇이 넘치는’ 일본진도4 이상의 지진만 작년에 45회 경험했다. 2017년 포항지진 수준(진도6)에 해당하는 일본진도5약(弱) 이상의 지진은 2019년 9회, 2020년 7회 발생했다. 지난 10년간 규모(M)6.0 이상 지진이 매년 평균 16회 닥쳤다.

지진이 일상인 만큼, 통상 일본진도3(진도4) 이하의 ‘약진’은 무심히 넘긴다. 하지만 그럴 경우에도 P파와 S파가 온몸을 관통할 때의 불안감까지 떨치긴 어렵다. 일본 사회는 대비책에 집착한다. 사무실마다 안전모를 갖췄고, 유치원에서부터 지진대피 교육을 몸에 배도록 반복한다. 건물의 내진(耐震)설계는 기본이다. 요즘에는 흔들림을 줄인 ‘면진(免震)’, ‘제진(制震)’ 기능을 갖춘 건물도 적지 않다. 또 모두가 정전에 대비해 항상 비상금도 구비한다.

지진에 이골이 난 일본인들이지만 때로는 예상을 뛰어넘는 일본진도7(진도9 이상)의 ‘대지진’이 엄습해 그들의 인내를 시험하기도 한다. 1995년 고베를 강타한 한신대지진 때는 6000여 명의 사상자가 나왔고,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사망자와 실종자는 2만여 명에 달했다.

동일본 대지진 10주년을 앞두고 지난 주말 밤 후쿠시마현 앞바다에서 규모 7.3, 일본진도6강(진도8)의 강진이 발생했다. 진앙에서 수백㎞ 떨어진 도쿄에서도 “이렇게 긴 지진은 처음”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특히 동일본 대지진 때 큰 피해를 봤던 지역에선 “쓰나미 가능성이 없다”는 방송에도 시민들이 고지대로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트라우마가 ‘지진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며 체념하던 일본인들의 집단심성에도 변화를 일으키는 모습이다.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