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류이야 뿌엉후푸 우이어~고래와 대화를 나눠 본 적 있나요?
시장에서 구입했을 법한 파란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중년 여성이 몸을 숙여 길고양이와 눈을 맞춘다. 고양이를 따라 기지개를 켜기도 하고 좁은 담벼락 위를 따라가기도 한다. 재개발을 앞둔 서울 은평구 갈현동의 풍경이다. 길고양이는 누군가에게는 혐오의 대상이지만 누구보다 오래 이 지역을 지켜왔고 인간과 공존해온 생명체다. “이곳이 재개발되면 깔끔한 아파트가 들어서겠죠. 여기에 살던 고양이는 어디로 갈까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사이 대량학살이 자행되는 겁니다.”

홍이현숙은 여성주의 1세대 작가로 꼽힌다. 가부장적 사회와 시선에 저항하는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몸을 퍼포먼스, 영상, 설치 등으로 구현해왔다.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홍이현숙의 개인전 ‘휭, 추-푸’(사진)에서는 시각을 인간이 아닌 존재에까지 넓혔다. 인간의 언어를 넘어서 자연과 소통하고 공존을 모색하려는 시도가 가득하다.

전시의 제목은 바람에 무언가 날리는 소리인 ‘휭’, 남미 토착민 언어인 케추아어로 동물의 신체가 바람에 휘날릴 때 나는 소리 ‘추푸’에서 가져왔다. 제목처럼 전시는 의성어와 의태어, 동물이 빚어내는 낯선 소리로 가득하다. 전시장에 들어서기 전, 잠깐 고개를 들어 창문을 올려다보자. “뿌류이야 뿌엉후푸 뿌우 우이어~.”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자가 창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고래의 소리를 들리는 대로 옮겨 적은 것이다.

첫 번째 전시장에 들어서면 이 문자들을 실제 소리로 들을 수 있다. 캄캄한 공간에 뗏목처럼 덩그러니 놓여있는 방 하나, 그곳을 8마리의 고래가 주거니 받거니 나누는 소리가 가득 채운다. 13분짜리 사운드 설치 작업 ‘여덟 마리 등대’다. 작가는 뗏목 위에 앉아 소리에 귀 기울여보라고 권한다. “망망대해에서 뗏목을 타고 홀로 떠다니다 보면 소음처럼 들리던 고래의 소리가 우리를 이끌고 함께해주는 등대처럼 느껴지지 않을까요?”

인간의 시선으로 자연의 언어를 폄훼하지 말아야 한다는 작가의 메시지는 전시 곳곳에서 드러난다. 서울 갈현동 길고양이와의 공존을 모색한 ‘석광사 근방’, 북한산 승가사에 있는 마애불을 작가가 직접 만지고 음성으로 묘사하는 ‘지금 당신이 만지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전 지구적인 감염병 위기 속에서 지금 우리는 동물, 자연과 얼마나 공존하고 있는지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다음달 28일까지 사전 예약을 통해 관람할 수 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