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꼬 튼 키코 분쟁 자율조정, 은행 참여 이어질까
한국씨티·신한·DGB대구은행이 일부 키코(KIKO) 피해기업에 대한 보상을 결정하면서 다른 은행들의 행보에도 관심이 쏠린다.

하나은행은 보상 여부를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향후 하나은행의 행보가 키코 자율조정이 추진력을 얻거나 잃는 변곡점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달 4일 열린 하나은행 이사회에서는 키코 보상 문제에 대한 의견 교환이 일부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보상 여부를 결정할 만큼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키코 보상과 관련해 "아직 추가 사실을 확인하고 내부적으로 검토하는 중"이라며 "결정된 사항은 없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하나은행의 결정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배상 여부를 결정하지 않은 나머지 은행들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에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하나은행의 논의 경과를 좀 더 지켜본 뒤에 협의체를 전반적으로 정비하고 다른 은행들의 의사를 다시 타진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간 금융감독원이 키코 피해 기업 147곳에 대한 분쟁 자율조정을 추진하는 것을 두고 금융권에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앞서 금감원이 은행 6곳(신한·우리·산업·하나·대구·씨티은행)의 불완전판매 책임을 인정하면서 피해 기업 4곳에 손실액의 15∼41%를 배상하라고 명시적인 분쟁조정안을 냈을 때도 권고안을 수용한 곳은 우리은행 한 곳에 그쳤기 때문이다.

자율조정 대상 기업에 키코를 판매한 11개 은행 중 산업은행을 제외한 10곳(신한·우리·하나·대구·씨티·KB국민·기업·농협·SC·HSBC은행)이 참여하는 은행협의체가 지난해 7월 출범했으나 이후 논의는 지지부진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씨티은행과 신한은행이 자체 기준에 따라 일부 키코 피해기업에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잇달아 결정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달 5일에는 대구은행도 이사회를 열고 일부 보상을 결정했다.

이들 은행은 '법률적 책임은 없지만, 은행의 사회적 역할과 중소기업의 어려운 현실을 고려해 보상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보상에 참여하는 은행이 늘수록 나머지 은행들로선 '나홀로 보상'이나 배임에 대한 우려가 줄고 참여 유인은 커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만 키코 배상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여전히 많다.

은행들은 민법상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10년)가 지나 법적 의무가 없는 상태에서 배상하는 것이 업무상 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고 지적해왔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달 12일 기자간담회에서 "불완전판매를 했다는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의 판정을 납득하기 어렵고, 법률적으로 종결된 사안의 번복은 굉장히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키코는 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변동하면 약정한 환율에 외화를 팔 수 있어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없앨 수 있지만, 범위를 벗어나면 큰 손실을 보는 파생상품이다.

수출 중소기업들이 환 헤지 목적으로 가입했다가 2008년 금융위기로 환율이 급등하면서 큰 피해를 봤다.

대법원은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키코 상품의 불공정성·사기성을 부인했으나, 상품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불완전 판매'에 대해서는 몇몇 사례에서 인정한 바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