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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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형 퇴직연금(IRP) 잔액이 지난해 30%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 등 판매사가 ‘13월의 월급’인 연말 정산 봉투를 두둑히 해줄 수 있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리며 가입자를 대거 끌어모았고, 지난해말부터 코스피 지수가 상승 랠리를 타면서 ‘쥐꼬리’로 취급받던 수익률이 크게 개선됐기 때문이다. 다만 여전히 수익률이 낮은 원금 보장형 계좌의 잔액이 전체의 73%가 넘었다. 2012년 도입된 IRP가 ‘중흥기’로 접어들지 기로에 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년 대비 잔액 30% 증가

3일 금융감독원 연금포털에 따르면 2020년말 기준 국내 은행, 증권사, 보험사의 IRP계좌 잔액은 33조5569억원을 기록해 2019년 연말의 25조3950억원에 비해 32% 증가했다. 2012년 제도 도입 이후 1년 새 가장 큰 금액이 불어났다.

IRP는 가장 보편적인 연금이다. 회사가 퇴직금을 굴려주는 확정급여(DB)형 퇴직연금과 달리 개인이 운용 지시를 해야한다는 점은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과 같다. 직장을 그만두면 새 직장에서 다시 가입해야하는 퇴직연금과는 달리 연속성이 보장된다는 게 차이점이다.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고 개인의 ‘책임투자 원칙’이 마련된 현대에 가장 알맞는 상품이다.

IRP 제도는 2017년 ‘소득이 있는 누구나’ 가입할 수 있도록 확대 개편됐다. 그동안 ‘천덕꾸러기’로 취급되기도 했다. 퇴직연금에 가입했는데 왜 별도로 IRP를 들어야 하는지 의문을 느끼는 개인이 많았고, 막상 가입해도 운용지시를 내리는 게 변거로와 ‘그냥 묻어두는’ 경향도 강했다. 실제 수익률 면에서도 다른 금융투자상품과 차별성이 적었다.

정부가 활성화를 위해 세제혜택을 마련하면서 은행, 증권사 등이 IRP 마케팅을 강화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만 50세 이상이면 연간 불입액 900만원(연금저축과 금액합산)까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지난해 잔액이 대폭 늘어난 것은 이런 마케팅 경쟁에 주식시장의 활황이 겹친 결과라는 분석이다. 증권사 14곳, 은행 12곳 보험사 17곳의 지난해 말 평균 IRP 수익률은 원금 보장형은 연 1.56%, 비보장형 경우 연 13.6%를 기록했다. 2019년엔 보장형의 경우 연 1.79%, 비보장형은 연 6.56%였다.

○여전히 원금 보장형이 4분의 3

한 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증시에 따라 적극적으로 운용을 지시한 가입자들이 특히 큰 수익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똑똑한 개인들이 상승장에 적극적으로 운용을 펼쳤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런 수익은 일부만 누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전히 IRP 자금을 은행 및 저축은행 예금과 발행 증권사가 망하지 않는 한 원금을 보장받을 수 있는 파생결합사채(ELB) 등에만 묻어두는 개인이 많기 때문이다. IRP계좌에선 주식과 채권, 대체투자 상품을 담은 실적 배당형 펀드를 70%까지 투자할 수 있다. 2020년말 원리금 보장형 상품(금액 기준)의 비중은 전체의 73%인 24조7717억원에 달했다. 배당형 펀드를 한 푼도 담지 않은 계좌가 전체의 4분의 3이었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현 시점서 다시 비보장형을 보장형으로 돌리는 등의 극단적 포트폴리오 변경도 권하기 힘들다. 최근 주식시장이 횡보세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민오임 하나은행 연금상품유닛리더는 “기존에 이익이 난 자산이 있으면 이익을 확정할 수 있도록 안전자산으로 파킹(묻어두는 걸) 추천한다”며 “IRP가입자는 자신 계좌의 현황을 지켜보고 적극적으로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대훈/오현아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