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가 기습적으로 시도한 국민연금의 사외이사 선임 주주제안 추진이 29일 무산됐다. 경영계 등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힌 결과다. 일각에선 국민연금이 참여연대를 비롯한 특정 단체의 민원 창구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연금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기금위)는 이날 서울 소공동 더플라자호텔에서 올해 첫 회의를 열고 삼성물산, 포스코, CJ대한통운, KB금융, 우리금융지주, 신한금융, 하나금융지주 등 7개 기업에 사외이사를 추천하는 주주제안 관련 안건을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 추천 위원들을 중심으로 논의 절차의 타당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컸기 때문이다.

해당 안건은 포스코와 CJ대한통운에 대해선 산업재해 발생이나 택배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 등을 주주제안의 이유로 들었다. 삼성물산에 대해선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KB금융·우리금융지주·신한지주·하나금융지주 등 금융지주사들에 대해선 라임, 옵티머스 등 사모펀드 관련 소비자 피해의 책임이 있다는 점을 들었다.

이번 안건은 기금위 내 민간위원인 이찬진 변호사(참여연대 집행위원장)가 전날 갑작스럽게 발의하면서 회의에 상정됐다. 규정상 기금위원 20명 중 7명의 동의를 얻으면 기금위에 안건으로 상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약 2주 전에 보건복지부를 통해 안건을 미리 공개하고 실무평가위원회 등을 통해 내용을 검토하는 절차를 거친다. 이날 회의에서도 전날 예고 없이 사외이사 추천이라는 중요한 안건이 발의된 것에 반발하는 의견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기금위는 해당 안건을 수탁자전문위원회로 넘겨 추가 검토한 뒤 다시 논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상법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주주제안을 하기 위해선 주주총회일 6주 전까지 서면 또는 전자문서로 마무리해야 한다. 대부분 상장사의 정기주총이 3월 중 마무리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주주제안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크게 낮아졌다.

해프닝으로 일단락됐지만 국민연금 안팎에선 이번 발의가 사실상 ‘날치기’로 이뤄진 편법 행위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2019년 상당한 갈등 끝에 제정한 ‘적극적 주주권행사 가이드라인’의 취지에도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런 식의 기습 발의는 애써 만든 주주활동의 프로세스를 무력화하는 것”이라며 “국민연금을 특정 집단이 민원 창구처럼 활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