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 여성 부행장 시대 연 기업은행…뭐가 다른가 봤더니 [정소람의 뱅크앤뱅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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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은행마다 여성 부행장을 선임한 적은 있으나 여성 부행장 두 명이 동시에 근무한 은행은 거의 없었습니다. 타 업권은 '여성 임원 시대'가 열린지 오래지만, 은행권은 특유의 보수적인 문화 탓에 여전히 '유리천장'이 남아 있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기업은행이 최초로 복수 여성 부행장 은행이 된 건 조직 문화가 크게 작용했다는 얘기가 많습니다. 기업은행은 주요 직급에 능력 있는 여성들을 다른 은행 보다 앞서 채용해 왔습니다. 여성 첫 은행장(권선주 행장)도 기업은행에서 나왔습니다.
기업은행 최초 여성 부행장이었던 권 행장 이후 김성미 전 개인고객그룹 부행장, 최현숙 전 여신운영그룹 부행장 등이 뒤를 이었습니다. 최 전 부행장은 현재 IBK캐피탈 대표로도 일하고 있습니다. 남성 부행장의 영역으로 인식돼 왔던 여신 영역을 담당하며 외연을 키우기도 했지요. 임 부행장과 신임 김 부행장을 포함하면 역대 다섯번째 여성 부행장입니다. 국내 은행 중에는 가장 많이 배출 한 건데요.
능력 있는 여성 인력들이 요직으로 가다 보니 서로 믿고 끌어주는 관계도 형성된 부분이 있을 겁니다. 실제 만나 본 기업은행의 여성 인력들은 하나 같이 앞서 임원이 된 여성 행장들에 대한 존경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 기업은행 관계자는 "기업은행의 여성 임원들은 실무 때부터 본인 분야에 전문성을 가지고 한 우물을 파 온 분들"이라며 "여성 우대를 해준 것이 아니라 실력대로 평가 받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최고경영자(CEO)의 마인드도 작용한 것 같습니다. 윤종원 행장은 여러 자리에서 "여성 인력을 동등하게 대우하겠다"는 발언을 자주 해 왔습니다. 일과 가정의 양립을 지원하고, 최대한 본인 능력대로 평가하겠다는 취지인데요. 한 은행 여성 임원은 "'워킹맘'이다 보니 가끔 눈치를 볼 일이 있었는데, '여성이라고 배려해 주시는 것 같아 송구하다'고 윤종원 행장께 이야기 한 적이 있다"며 "'무슨 말씀이냐. 평생 여성이라 차별 받고 사셨는데, 이쯤은 배려도 아니다'라고 답을 해주셔서 감동한 적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도 윤 행장은 육아 휴직에 들어가는 여성 직원들을 별도로 불러 모아 식사를 함께 했다고 합니다. 이 자리에서 "자녀와 함께 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니 눈치 보지 말고 잘 다녀오라"고 직접 격려를 했다고 하네요.
이런 문화는 기업은행의 복지 제도에도 반영이 되어 있습니다. 기업은행은 은행권 최초로 노사합의를 통해 육아 휴직을 3년으로 늘렸습니다. 또 임신·출산기 휴가 뿐 아니라 양육기에도 업무 중 수유시간(1일 2회 30분 이상)을 부여하고, 자녀 작명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양성 평등을 위한 제도를 보유했습니다.
앞으로 5년 안에 여성 부행장 비중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기업은행 임직원 얘기입니다. 올해 초 기준 부점장급 이상 여성 인력이 110명 수준입니다. 전체의 10% 수준이지만, 점점 늘고 있다는 전언입니다. 기업은행의 한 임원은 "과거만 해도 여성이 출산과 육아 때문에 은행을 다니다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연착륙해 자기 기량을 보이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임원을 단 여성 인력들이 좋은 능력과 평판을 받으며 '동기 부여'를 해주면서 선순환이 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여성 임원은 상징적으로 뽑는다'는 말이 점점 옛말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은행권에서는 기업은행이 가장 선봉에 서 있는 듯합니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