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당국의 폭행·고문에 거짓 자백…만기출소 후 재심 청구
복역 중 진범 잡혔으나 기소 안돼…재심 끝난뒤 징역 15년 단죄
'약촌오거리 사건' 누명 써 10년 옥살이…배상까지 20년
수사기관의 거짓 자백 강요로 살인범으로 몰려 10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한 피해자가 국가로부터 13억원의 배상금을 받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5부(이성호 부장판사)는 13일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수감됐던 최모씨가 국가와 당시 사건을 수사한 경찰관·검사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피고들이 최씨에게 13억원을, 그의 가족에게는 총 3억원을 각각 배상하라고 판시했다.

평범한 10대였던 최씨가 살인사건에 휘말려 옥살이를 한 사연은 2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0년 8월 10일 새벽 2시께 전북 익산시 약촌오거리 부근을 지나던 16세 소년 최씨는 택시 운전사 A(42)씨가 흉기에 찔려 피를 흘린 채 쓰러져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사건의 최초 목격자이자 범인의 도주 모습을 본 최씨는 경찰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했지만, 경찰은 오히려 폭행과 고문을 하며 그를 범인으로 몰아갔다.

견디다 못한 최씨는 결국 "시비 끝에 A씨를 살해했다"는 거짓자백을 해 버렸고, 그 후 재판은 정황증거와 진술만으로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결국 최씨는 법원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2010년 만기 출소할 때까지 청춘을 교도소에서 보냈다.

진실이 바로잡힐 기회가 없지는 않았다.

최씨가 복역 중이던 2003년 경찰은 진범이 따로 있다는 첩보를 입수해 용의자 김모씨를 붙잡아 자백까지 받아냈다.

그러나 검찰은 증거 부족과 진술 번복 등을 이유로 김씨를 기소하지 않았다.

사건은 그렇게 묻힐 뻔했다.

하지만 출소한 최씨에게 2013년 재심 사건 전문가인 박준영 변호사가 재심 청구를 권유했다.

3년 8개월의 법정 다툼 끝에 법원은 2016년 "수사 기관으로부터 불법 체포·감금 등 가혹행위를 당해 거짓진술을 했다"며 최씨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그는 비로소 살인 누명을 벗게 됐다.

최씨에 대한 무죄 선고와 함께 수사당국은 진범 김씨를 체포해 기소했고 김씨는 2018년 징역 15년이 확정돼 18년 만에 죗값을 치르게 됐다.

최씨의 사건은 수사기관의 잘못된 관행이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어낸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검찰과거사위원회와 경찰청은 최씨의 누명이 밝혀지자 "무고한 시민을 범인으로 몰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최씨의 사연을 소재로 한 영화 '재심'이 제작됐으며, 2017년 개봉해 242만명이 관람했다.

박 변호사는 선고가 끝난 뒤 "개인의 인권을 찾아주고 무죄를 받아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됐다"며 "다시는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소회를 밝혔다.

최씨가 이날 판결로 받게 될 손해배상금은 재심 무죄 판결로 2017년 받은 형사보상금 8억4천여만원과는 별개다.

최씨 사건은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성여(53)씨 사건과 유사한 점이 많다.

박 변호사는 이춘재가 2019년 뒤늦게 범행을 자백하자 윤씨의 재심 사건 변론도 맡아 지난달 17일 법원에서 무죄 선고를 끌어냈다.

박 변호사는 이날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최씨 사건과 마찬가지로 윤성여씨도 내달 중 형사보상금과 국가에 대한 손해배상금을 청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법조계에서는 윤씨가 32년간 살인범이라는 누명을 썼고 그중 20년을 감옥에서 보낸 점을 고려하면 형사보상금과 손해배상금을 합해 20억∼40억원을 받게 되리라는 관측도 나온다.
'약촌오거리 사건' 누명 써 10년 옥살이…배상까지 20년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