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판사 "야만 속에 살겠다는 것"…법무부 "불가피"
'김학의 출금' 위법성 논란 속 검사들 "법·절차 무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출국금지 위법성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검찰 내에서도 "법과 절차를 무시한 일"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법무부가 당시 대검 과거사 진상조사단에 파견된 이규원 검사에게 긴급 출국금지 요청 권한이 있었다며 '문제가 없다'는 취지로 해명하면서 논란에 기름을 부은 형국이다.

법무부는 전날 오후 입장문을 통해 "대검 진상조사단 소속 이규원 검사는 당시 `서울동부지검 검사직무 대리' 발령을 받은 수사기관"이라며 "내사 및 내사번호 부여, 긴급 출국금지 요청 권한이 있다"고 해명했다.

'수사기관은 긴급한 필요가 있는 때에는 출국금지를 요청할 수 있다'는 출입국관리법 조문을 근거로 댔다.

하지만 검찰 내에선 이 검사의 당시 행동이나 법무부의 해명을 놓고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간부급 A 검사는 13일 "진상조사단은 수사권이 없어 거기에 파견된 검사는 검사의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며 "필요하다면 동부지검이든 어디에 수사의뢰를 해서 사건 번호를 만들고, 출국금지도 그 기관의 판단에 따라서 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검사의 행위가 문제없다는 논리라면, 외부 금융기관에 파견 나간 검사가 자기 이름으로 마음대로 출금도 요청하고 기소도 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수도권의 한 부장검사도 "적법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면 아무리 전 국민의 공분을 산 사건이라도 잘못된 수사, 사법권 행사가 되는 것"이라고 유감을 표했다.

'김학의 출금' 위법성 논란 속 검사들 "법·절차 무시"
이 검사가 당시 동부지검 검사 직무대리였다고 해도 법무부의 설명처럼 긴급 출국금지 요청 권한을 갖는 건 아니라는 반박도 나왔다.

출입국관리법 시행령상 긴급 출국금지를 요청하는 주체는 `수사기관의 장'으로 돼 있기 때문이다.

지방 검찰청의 한 간부는 "시행령에는 명확히 수사기관장이 출금을 요청하게 돼 있다"며 "이 검사가 기관장도 아니고 당시 출금 요청 사실을 동부지검장이나 차장검사가 알았느냐"고 반문했다.

실제로 이 검사가 제출한 긴급 출금 요청서에는 동부지검장의 결재가 빠져 있다.

이 검사에게 긴급 출금 권한이 있다고 해도 김 전 차관이 무혐의 처분을 받은 서울중앙지검 사건번호(2013형제65889호)로 '긴급 출금 요청서'를 작성하고, 사후 승인을 받기 위해 당시 존재하지 않던 서울동부지검 내사번호(2019년 내사1호) 활용한 것은 명백한 공문서위조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정유미 인천지검 부천지청 인권감독관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공문서를 조작해서 출국금지를 해놓고 관행 운운하며 물타기 하고 있다"며 "내가 몸담은 20년간 검찰에는 그런 관행 같은 건 있지도 않고, 그런 짓을 했다가 적발되면 검사 생명 끝장난다"고 비판했다.

사법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김태규 부산지법 부장판사는 SNS에 "아무리 형사처벌 필요성이 절박해도 적법 절차의 원칙을 무시할 수 없다"며 "'나쁜 놈 잡는데 그깟 서류나 영장이 뭔 대수냐, 고문이라도 못할까'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냥 야만 속에서 살겠다는 자백"이라고 꼬집었다.

다만 당시 상황을 잘 아는 한 법조계 관계자는 "당시에도 긴급 출금 절차상의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일부 있긴 했지만, 그때의 사회 분위기는 그걸 문제제기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상황이었다"며 "김 전 차관을 그대로 내보냈을 경우에 미칠 파장이 커 무리할 수밖에 없던 측면도 있다"고 전했다.

법무부도 "당시는 중대한 혐의를 받고 있던 전직 고위 공무원이 심야에 국외 도피를 목전에 둔 급박하고도 불가피한 사정을 고려할 필요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