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 전 '공백' 메우는 효과낼 듯
무거워진 산재 처벌…반복·다수 피해 사고에 '철퇴'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12일 의결한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위반 범죄의 양형기준안은 피해 규모와 반복성을 고려해 형량을 대폭 높인 것이 핵심 내용이다.

달라진 산안법 양형기준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 시행 전까지 강화된 산재 처벌의 법적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반면 산안법 양형기준이 시행되면 공포일로부터 '1년 뒤 시행'의 유예기간을 둔 중대재해법의 취지가 무색해진다는 재계의 비판도 예상된다.

◇ 특별가중인자에 반복성·규모 추가
양형기준 논의에서 중요한 결정 중 하나는 특별가중인자에 어떤 요소를 포함할지다.

특정 사건에서 특별가중인자의 개수는 양형기준상 ▲ 감경 ▲ 기본 ▲ 가중 ▲ 특별가중 등 영역을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가령 특별가중인자가 특별감경인자보다 더 많은 사건의 양형기준 영역은 '가중'으로 분류돼 더 높은 형량이 권고된다.

반대로 특별감경인자가 특별가중인자보다 더 많으면 형량이 더 낮은 '감경' 영역으로 분류된다.

특별가중인자가 특별감경인자보다 2개 이상 더 많으면 '특별가중영역'으로 분류돼 가중영역보다 더 무거운 처벌이 권고된다.

안전조치 의무 위반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가중영역 권고형량의 상한은 징역 5년, 특별가중 영역은 7년이다.

양형위는 이날 위반 정도가 중한 경우와 동종 누범 등 2개였던 산안법 범죄의 특별가중인자에 유사 사고의 반복적 발생과 다수 피해자 발생 등 2개를 추가했다.

사고가 반복적으로 발생했거나 피해 규모가 크면 양형기준상 가중영역 이상으로 분류될 수 있어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

특별감경인자도 처벌을 무겁게 하는 방향으로 정비됐다.

'상당 금액 공탁'은 특별감경인자에서 빠졌고 '피해자에게도 과실이 있는 경우' 등은 '특히 참작할 사유'에 합쳐졌다.

'자수·내부고발'은 수사 효율성을 위해 특별감경요인으로 추가됐다.

청각·언어장애, 정신질환 등 심신미약, 처벌불원은 그대로 유지됐다.

이번 양형기준안에서 사업주뿐만 아니라 도급인에게도 적용할 수 있도록 한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업계에서 재하청이 관행으로 자리 잡은 점을 반영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피해자를 근로자로 한정해 현장실습생 사고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도 반영해 '현장실습생 치사'에도 양형기준안을 적용하도록 했다.

무거워진 산재 처벌…반복·다수 피해 사고에 '철퇴'
◇ 3월 말 의결되면 시행…사실상 중대재해법 `예고편'
원칙적으로 양형기준은 법관이 형량을 정할 때 참고하는 사항일 뿐 구속력은 없다.

하지만 법관이 양형기준에서 벗어나는 판결을 할 때는 그 이유를 기재해야 한다.

법관이 합리적 사유 없이 양형기준을 거스를 수 없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이번에 새롭게 바뀐 산안법 양형기준이 재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 중대재해법 시행 전까지 법적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중대재해법은 산재나 사고로 노동자가 숨지면 해당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이나 10억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근로자 사망사고에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 산업안전보건법보다 처벌 수위가 높다.

산안법 양형기준안은 다음 달까지 시민단체·연구기관 등의 의견 수렴, 공청회 등을 거쳐 3월 29일 열리는 전체회의에서 최종 확정·의결된다.

확정된 양형기준은 한 달 내 관보에 게재되는데 그 이후부터는 언제든 시행될 수 있다.

1년의 유예기간을 두고 있는 중대재해법에 앞서 양형기준이 적용될 수 있다는 의미다.

양형위는 최종안을 의결하면서 시행일도 함께 정할 예정이다.

강화된 산안법 양형기준이 사실상 중대재해법의 '예고전'이 될 수 있다는 재계의 비판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관계자는 "산업안전보건법 양형 기준 논의는 중대재해법 제정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진행됐다"고 말했다.

무거워진 산재 처벌…반복·다수 피해 사고에 '철퇴'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