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세포에서 특정한 효소가 늘면 비알콜성 지방간(NASH)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비알콜성 지방간이 생기는 원리가 밝혀지면서 치료제 개발에 청신호가 켜졌다는 평가다.

고은희·이기업 서울아산병원 내분비내과 교수팀은 비알코올성 지방간염이 있는 쥐의 간세포에서 ‘스핑고미엘린 합성효소(SMS1·sphingomyelin synthase 1)’ 발현이 증가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11일 발표했다. SMS1이 증가하면서 간 조직에 염증과 섬유화가 나타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연구팀은 동물실험을 통해 밝힌 SMS1의 역할을 사람 대상 임상시험에서도 확인했다. 공동연구팀인 스페인 바르셀로나 국립연구소가 비알코올성 지방간염에서 간암으로 발전해 간이식을 받은 환자를 대상으로 간 조직을 분석했더니 모든 환자에게서 SMS1 발현이 증가했다.

비알콜성 지방간염의 진행 기전이 규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소화기분야 국제학술지(Gut) 온라인판에 실렸다.

비알콜성 지방간염은 고지방 위주 식사와 운동부족 등 잘못된 생활습관으로 간에 지방이 쌓이고 염증이 생기는 질환이다. 환자 5명 중 1명은 간이 딱딱해지는 간경화(섬유화)나 간암을 앓게 되는데 B·C형 간염과 달리 치료제가 없다. 간 이식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SMS1는 생체막을 구성하며 필수 지방산을 공급하는 지질이다. 고 교수팀은 SMS1에 의해 만들어진 디아실글리세롤이 세포 사멸을 촉진하는 피케이시델타(PKC-δ) 물질과 염증조절에 관여하는 NLRC4 인플라마좀 유전자를 순차적으로 활성화한다는 사실을 동물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이 때문에 간세포에서 강한 염증성 반응에 의한 세포 사멸(피이롭토시스)이 증가하고 간 세포 밖으로 위험신호가 퍼져 염증 및 섬유화 반응을 유도하는 NLRP3 인플라마좀 유전자가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비알콜성 지방간염은 비만 인구가 많은 미국 등에서 간경화와 간암의 주요 원인질환으로 보고된다. 환자의 20% 정도가 간경화를 앓고 간부전과 간암에 의해 사망한다. 단순 지방간보다 간질환으로 사망할 위험이 5.7배 높고 간경화를 동반하면 사망 위험이 10배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B형과 C형 간염에 의한 간경화는 항바이러스제가 있어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 하지만 비알콜성 지방간염은 간 조직 내 지방 축적을 줄이거나 염증 반응을 억제하는 약물만 일부 개발됐다. 환자 생존율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비알콜성 지방간염 진행을 막을 치료제 개발이 절실하다.

고은희 서울아산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비알콜성 지방간염 환자의 장기 예후를 결정하는 요인은 섬유화 진행"이라며 "이번 연구에서 비알콜성 지방간염의 진행 기전이 밝혀지면서 앞으로 간경화로의 이행을 효과적으로 억제할 치료제 개발이 활발히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